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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누른대 출신 조선시대 충신 유자광 <34>

3. 한양으로 <6>

 

건춘문은 경복궁의 동문으로 바로 문 안 쪽에 세자가 기거하는 춘궁이 있었다.

건춘문은 임금의 친족인 왕족이나 상궁들만 드나들었으므로 늘 한가했다. 형 자환이 날마다 사헌부 대사헌으로 입궐을 했지만 건춘문은 일반 벼슬아치들이 드나드는 문이 아니었으므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자환이 동생 자광을 보고 싶으면 하인을 건춘문으로 보내왔다.

아니면 안국방 언저리에 마련한 자광의 단칸방으로 자신이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대사헌 쯤 되면 가마를 타고 요란스레 다녀도 될 터인데도 자환은 늘 평복 차림의 소박한 모습으로 자광을 찾아왔다.

“돌쇠를 보내시지 않구요.”

“번거롭게 그럴 것이 있느냐? 그래, 문지기 노릇은 할만 하냐?”

“그냥, 하는 것이지요. 할만 해서 하겠습니까? 형수님은 또 절에 가신 모양이지요?”

“아예, 절에서 산다. 부처님이 나보다 좋은 게지.”

자환이 쓸쓸한 웃음을 날렸다.

‘부처님이 아니라 중놈이 좋은 것이겠지요.’

자광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주막에서 들은 소리가 있었다.

사대부가의 며느리들이 혼인한지 3년이 되어도 자식이 없으면 부처님께 빌어 자식을 얻겠다고 절에를 다니는데, 그렇게 빌어 낳은 자식은 열에 일곱 여덟은 중의 자식이라는 것이었다.

이번수와 김번수를 데리고 주막에서 탁배기를 마실 때였다.

혼인한지 다섯 해만에 마누라가 자식을 가졌다고 싱글벙글하는 이번수에게 김번수가 찬물 끼얹는 소리를 했다.

-이번수, 제수씨도 설마 부처님 전에 빌어 수태를 한 것은 아니겠지?

-부처님 전에 바칠 시주가 없는데 무슨 수로 절엘 다니겠는가? 순전히 조상님 전에 빌어 점지 받은 자식일세.

-그렇다면 다행이군. 절에 빌어 낳은 자식은 열에 일곱 여덟이 그 절 중의 자식이라고 하더라구.

-설마, 신성한 부처님 앞에서 그럴 리가 있는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네. 남자건 여자건 사람처럼 교활한 짐승이 어딨는가? 따지고 보면 중도 사내가 아니던가? 자식을 얻어야 하는 절박한 계집들의 요사스런 몸짓에 넘어가지 않을 사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다행이군. 내 마누라는 부처님 근처에는 가 본 일도 없으니까.

자광이 알기로 형수 윤씨는 사흘이 멀다고 절 출입을 했고, 한번 가면 최소한 이레는 절에서 머물고 온다고 했다.

윤씨가 자신을 얼자취급 밖에 안 해주는 데도 자광이 형 자환의 집을 무시로 드나들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윤씨의 잦은 절 출입 덕분이었다.

건춘문이나 안국방으로 자광을 부르러 온 하인이 그랬다.

-아씨마님께서 절에 가셨습니다.

일테면 형수 윤씨가 절에 갔으니까 마음 놓고 찾아와도 된다는 뜻이었다.

윤씨의 그런 행동에 자환은 또 무심했다. 절에 가건, 절에서 돌아오건 상관을 하지 않았다.

자광이 찾아가면 자환이 한숨을 섞어 말했다.

“미안하구나. 명색이 이조참판을 하면서도 너 하나 번듯한 자리에 내세울 수가 없구나. 네 재주가 내 재주보다 훨씬 나은데, 갑사노릇이나 하고 있는 너를 도울 방법이 없구나. 동생 하나도 제대로 챙길 수 없는 형이라면 기성군이 무슨 소용이며 이조참판이 무슨 소용이라는 말이더냐?”

“제가 감당해야 할 제 일입니다, 형님. 저는 형님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천하를 얻은 듯 기쁩니다.”

“네 뜻이 갑사에 머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 형은 잘 알고 있니라.”

“때가 오겠지요. 저는 지금 그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님.”

그런 어느날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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