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아침을 여는 창
황의지<8회>-8.15 일본 항복- 우리는 소련군에 무장해제 된 채 전쟁포로로 시베리아로 끌려가아침을 여는 창/ 수필가 서호련

 

 

 

 

 

 

 

시베리아의 겨울은 영하 40, 50도까지 내려가고, 여기에 강풍이 일 때는 체감온도가 영하 70도까지 내려가 우리 체질에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또한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기만 할 뿐 녹는 것은 볼 수 없었다. 다음 해 5월이 되어야 비로소 녹기 시작했다. 겨울은 9시가 되어야 날이 새고, 오후 4시가 되면 어두워졌다. 그러기 때문에 손·발·코·귀·볼이 하루에도 몇 번씩 동상에 걸리기 일쑤였고, 소변은 땅에 떨어지면서 얼어버리고, 대변을 볼 때는 정말 엉덩이 내 놓기가 힘들 정도였다.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해방을 맞이한 날부터 한 달이 지난 9월 15일 연대병력 전체를 완전무장한 채로 집결하라는 승전국 소련 측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소련군이 와서는 전 병력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모두를 기차에 승차시켰다. 기차는 두 개의 화통을 앞뒤로 달고 어디론가 향하여 출발하였다. 사평에서 출발하여 봉천, 신경, 지지하루, 손오, 흑하 까지 가는데 10월 10일에 도착했으니 25일이나 걸린 것이다.

일본군이 항복을 하자 소련군은 승전국으로서 일본 군인들을 전쟁포로로 잡아 이곳으로 끌고 온 것이다. 우리 조선인들은 일본군 복장을 입고 일본군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과 함께 소련의 포로로 잡혀오게 된 것이다. 이곳으로 잡혀온 포로는 1천5백 명인데, 그 중 조선 사람이 모두 33명이었다. 우리는 전쟁포로 신세가 되었기 때문에 지정된 일터에 나가 경계병의 감시 하에 규정된 8시간 노동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소련 놈들은 일본 놈들과는 달랐다. 포로가 되었거나 일반 사람이거나 간에 구타를 하는 행동은 일체 없었다. 말썽을 일으키면 형무소에 보낸다는 말로 협박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영내 건물의 구조는 단층으로 지하에 절반이 묻혀 있고, 지상으로 절반이 솟아 있는 흙벽과 흙 지붕으로 되어 있었다. 벽은 두꺼웠고, 문짝은 세 겹 이었다. 보기만 해도 동장군의 엄습을 피하고 심한 바람을 견뎌내기 위해서 그렇게 지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기만 할 뿐 녹는 것은 볼 수 없었다. 다음 해 5월이 되어야 비로소 녹기 시작했다. 겨울은 9시가 되어야 날이 새고, 오후 4시가 되면 어두워졌다. 식사는 밀가루 빵에다가 수프를 만들어 마시며, 설탕가루와 버터. 치즈. 우유가 전부였기 때문에 식성이 맞지 않았다. 그나마 양이 적어 그것이라도 실 컷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임금은 실적에 따라 월급으로 주었다. 이것은 일반사회 노동자와 동일한 대우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포로수용법 규정에 따라, 지상노동은 실적에 따라 한 달에 150루블 까지 주었고, 지하노동은 2백 루블 까지 주었다. 그런데 월수입에서 한 달간 의식주 생활비를 공제하고, 그 외에 수용소 내에서 작업인원들을 위해 일하는 수십 명의 종사원들 생활비까지를 공제하는 것이다. 소련사람은 특기에 따라 진로를 결정하며, 능률에 따라 수입을 얻어 살게 되어 있으므로 불평과 욕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기 때문에 국가의 경제계획은 지체와 말썽이 없이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인재의 양성은 각 분야마다 국가에서 계획적으로 양성하며, 특기에 따라 안배하고, 체질에 따라 배치하여 그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산모의 태아에서부터 육아, 학교, 군인, 직장, 노인, 사후까지 모두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너나없이 물질에 구애를 받지 않고 충분한 사회보장을 받는다고 했다.

소련사람들은 강추위에도 썰매를 타고 눈 위를 다녔다. 볼이 능금처럼 붉고 눈썹에 눈꽃이 얼어붙어 있어도 견디어 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소련지방 사람들의 체질이 얼마나 강인한가를 알 수 있었다.

1946년 여름이 되자 우리 수용소 전원이 이동을 하게 되었다. 새로 가게 된 행선지는 카자흐스탄 노보시비르스크였다. 서쪽으로 우랄산맥이 있고, 동남쪽으로는 몽고고원이 있고,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저지대가 펼쳐져 있는 곳이다. 이곳 기차역에서 하역작업을 하고 있는데 하루는 뜻밖에도 조선 북녘 땅에 있는 수풍발전소 철제 기자재들이 몽땅 이곳으로 운반되어 왔다. 우리 조선에 시설되어 있던 시설물이 어떻게 여기까지 운반되어 온 것인지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불쾌했다.

<다음호에 계속>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np남원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남원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출처] np남원뉴스 - http://www.namwo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50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상호(법인)명 : 유한회사 엔미디어  |  우)55739 전라북도 남원시 충정로 128, 2층(향교동)  |  Contact : ygparknw2@hanmail.net
대표전화 : 063)625-1695  |  제보전화 : 063)625-1695  |  팩스 : 063)625-1695  |  사업자등록번호 : 446-81-00995
부정청탁방지담당관 : 발행인 박영규 010-8317-9990
등록번호 : 전북, 다01294  |  등록일 : 2016.02.25  |  발행인 : 박영규  |  편집인 : 신화자  |  청소년 보호 책임자 : 박영규
Copyright © 2023 np남원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