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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편제의 시조 가왕 송흥록 <12>

제가 백운암의 월광선사께 십년 동안 소리공부를 하고나자 어지간한 소리는 다 낼 수 있겠는데, 옥중가에서 귀곡성이 영 신통치가 않드구만요. 제가 참, 귀곡성을 얻기 위혀서 안 해본 것이 없구만요.

귀신의 울음소리를 얻어 듣는다고 보슬비 내리고 바람 부는 음산한 날에 공동묘지 가에서 밤도 숱허게 새 왔고요, 밤길얼 가다가 초분얼 만내면 초분가에서 또 날이 새기럴 기달리기도 혔구만요.

헌디도 지 정성이 부족혔던지, 귀신얼 만낼 수도 없고, 귀신의 울음소리 또한 들을 수가 없드구만요. 혼자 자작으로 온갖 귀신울음소리럴 하루에도 수백 번식 숭내럴 내 보아도 맴에 차지럴 않고요. 스승님께서는 이제 그만하면 세상으로 나가도 되겄다고 하시지마는 그 한 대목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어느날이었구만요.

그날도 보슬비가 내리고 음산헌 바람이 불었는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시도럴 혀보아야겄다고 작정허고 십리 길얼 걸어 공동묘지럴 안 찾아갔십니껴. 혼자 앉아 처량허고 청승맞은 맴으로 옥중가를 부르고 또 불렀지요.

그렇게 한참 소리럴 허고 있는디, 한 초립동이 저럴 찾아와서 영상대감께서 찾으시니 어서 가십시다, 허드랑깨요. 혀서 초립동얼 따라갔더니, 대궐 겉은 기와집의 육간대청 너른 마루에 삼정승 육판서와 높고 낮은 벼실아치덜이 좌정얼 허고 앉아 있는디, 캄캄헌 밤인디도 촛불얼 수십 개나 밝혀 대낮겉이 밝습디다요.

제일 높은 자리에 앉은 영상대감이 네가 비곡을 잘 부른다고 하니, 어디 옥중가를 한 번 들어보자고 하시드구만요. 어뜨케 허겄십니껴? 높으신 대감들 앞이라 사지가 덜덜 떨리제만 정신얼 바짝 챙기고 지가 생각혀도 가장 슬픈 목소리로 옥중가럴 불렀구만요.

감사나리께서도 아시겠지만, 옥중가가 춘향가 중에서도 젤로 슬픈 대목이 아닙니껴? 거그다가 귀곡성만 제대로 뽑아 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지라우.

지가 옥중가럴 마치고 다시 좌중얼 둘러본깨, 높고 낮은 벼실아치덜이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고 있는디, 영상대감이 웃으시며 가히 천하의 명창이구나. 허나 귀곡성이 부족하니, 나를 따라 부르거라, 하시고는 방금 지가 부른 그 대목을 한 번 불러 주시는디, 애원성언 지껏이나 영상대감 껏이나 거그서 거근 것 같은디, 귀곡성만언 지 몸에서 소름이 쫙 솟을 만큼 영락없는 귀신의 울음소리드랑깨요.

영상대감 앞에서 다시 한 번 옥중가럴 부르고 귀곡성을 숭내내는디, 지 소리럴 들은 대감께서 그만하면 되었니라, 앞으로나 뒤로나 그 대목만은 너를 뛰어넘을 자가 없을 것이니라, 허셔서 퍼뜩 정신얼 챙기고 본깨 비넌 부실부실 내리는디, 저 혼자 무덤가에서 자고 있드랑깨요. 헌디, 잠얼 깨고 나서도 꿈속의 일이 꼭 생시맨키로 선연허게 떠오르드랑깨요. 그려서 다시 한 번 꿈에서 들은 그 소리럴 혀봤더니, 소리럴 허는 지가 지 소리에 무서워 소름이 오싹 솟드랑깨요.”

“그것이 방금 네가 부른 그 귀곡성이었다는 말이지? 과연 귀산한테 배운 소리가 틀림없구나. 아마 모르면 몰라도 저년들 가운데는 귀신 울음에 놀라 속곳에 오줌을 싼 년도 있을 것이니라. 어찌하겠느냐? 내일이라도 당장 한양으로 올라가겠느냐? 네가 간다면 내가 행하와는 별도로 가마도 한 채 마련해 줄 것이며 따로 노자도 두둑히 내릴 것이니라.”

감사가 어찌할 것이냐는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감사나리의 말씸이 고맙기넌 헙니다만, 오란다고 뽀르르 달려가면 김 대감나리께서 웃으실 것이구만요. 시월이 좀묵는 것언 아닌깨, 서나서나 기회를 봐서 가지라우.”

“네 뜻대로 하거라마는, 통정대부 벼슬을 하사받으면 그날부터 너는 양반이 되느니라. 굴러온 기회를 차는 것 같아 안타깝구나.”

“제가 벼슬얼 받는다고 사또럴 헐 것입니까? 금관자 옥관자럴 달고 으스대기럴 허겄습니까? 또 그걸 달고 소리럴 허겄십니까? 저는 시방대로가 좋구만요.”

송흥록의 말에 감사가 입맛을 쩝 다셨다. 어찌어찌 세도가 김병기와 줄을 대보려는 감사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마음이 들여다보여 오히려 한양행이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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