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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편제의 시조 가왕 송흥록 <7>

하이고, 나 겉은 멍청이가 어딨으까이. 이몽룡이 월매 뒤럴 쫄래쫄래 따라가넌 대목얼 부름서도 내가 맹렬이럴 떠나보낸 심정으로 부르면 될 것이고, 심청이럴 남경상인헌테 딸려보낸 심봉사가 나도 데려가그라, 니 애비럴 생각거던 나도 데려가그라, 허는 대목도 그런 심정으로 부르면 저절로 진양조가 될 것인디.

혼자 무릎을 탁 친 송흥록이 주먹으로 바위를 두드리며 이몽룡이 월매의 뒤를 따라 옥방의 성춘향을 찾아가는 대목에서부터 온갖 귀신들이 춘향을 괴롭히느라 귀신울음소리를 내는 귀곡성 대목을 건너 춘향아, 춘향아 부르는 모친의 소리를 귀신의 부름으로 오해한 춘향이 ‘아이고 이 몹쓸 귀신들아, 나를 잡아가려거든 조르지 말고 잡아가거라. 내가 무슨 죄 있느냐? 나도 만일 이 옥문을 못 나가고 이 자리에 죽게 되면 저것이 모두 다 내 동무로구나’ 하는 대목을 부르고 숨을 고를 때였다. 뒤에서 느닷없는 소리가 들렸다.

“흐따 징허요, 성님. 기언시 진양조럴 맹글아 뿌렀소이.”

동생 광록이었다. 광록이 달빛을 흠씬 둘러쓰고 장승처럼 서 있었다.

“니가 언제 왔냐?”

양식거리라도 가져왔으려니 싶어 무심히 말했다.

“아까막시부터 성님의 소리를 듣고 있었소. 중모린가 중중모린가 삐끗거리던 소리가 단박에 진양조로 바뀝디다. 먼 생각얼 어뜨케 잡수셨기에 단박에 소리가 된다요?”

광록은 여전히 신기한 모양이었다.

“옛날 백운암에 있을 때에 스승님께서 허신 말씸얼 내가 깜박 잊고 있었제 뭐냐? 스승님의 말씸얼 되새긴깨 소리가 되드라.”

“스승님께서 뭐라고 허셨는디라?”

“맴묵기에 달린 일이라고. 내가 새소리럴 슬프게 낼라면 새끼럴 뱀헌테 잽혀 묵힌 어미새의 심정이 되어야 허고, 폭포소리럴 낼라면 우루루콸콸 쏟아지넌 폭포의 맴이 되어야 헌다는 말씸얼 허신 일이 있제. 내가 아까막시 안 그렸냐? 옥방으로 춘향이럴 찾아가는 이몽룡도 되었다가, 목심이 경각에 달린 춘향이도 되었다가, 안 그렸냐? 그렁깨 진양조가 제절로 되드라. 헌디, 뭔 일로 밝은 대낮얼 두고 달언 밝다마넌 야밤에 왔냐? 안직 양식이 이틀거리는 있는디. 맹렬이라고 돌아왔느냐?”

“흐, 성님언 또 맹렬이 타령이요? 갑시다, 집으로.”

광록이 서둘렀다.

“맹렬이도 안 왔담서 내가 뭣땜시 집으로 간다냐? 기왕 왔응깨, 한달언 채울란다.”

“흐참, 한가헌 소리허고 있소. 전주감영에서 감사나리가 가마럴 보내오셨소.”

“감사나리가 가매럴 보내와?”

“뭔 일인가넌 몰라도 사령놈덜도 둘이나 따라왔습니다.”

“거참, 별일이다. 맹렬이가 펄쌔 전주꺼정 가서 나럴 불러올리라고 했을리도 없는디.”

송흥록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감사가 가마를 보내왔다면 미상불 보통일은 아닐 것이었다. 구룡폭포를 떠나면서 송흥록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미적거리는 맹렬이를 훌훌 떨쳐버렸다. 전주에 간김에 충청도를 거쳐 한양까지 갔다가 그럴듯한 인연을 만나면 금강산 구경까지 할 요량이 순간적으로 섰다. 그렇게 훠이훠이 팔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맹렬이는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구감영에서 처음 만나 명창소리 듣기에 부족하지는 않으나 더욱 훌륭한 소리꾼이 되려면 목구멍에서 피 한 동이는 쏟아야겠다고 면박을 주던 맹렬이쯤은 가슴에서 비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피를 쏟고 득음을 한 것으로 보나, 떠나보낸 아쉬운 마음에 진양조를 완성해낸 걸로 보나, 맹렬과의 어설픈 인연이 악연은 아니었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소리 하나로 세상을 떠돌다보면 연분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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