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고, 그 지긋지긋헌 소리럴 날더러 또 하라고? 애먼 내 어깨뼈만 쌩고생얼 허그로, 하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쳐갔으나 송흥록은 차마 소리공부는 싫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너허고 나허고 단둘이 사는디, 땔나무가 들면 얼매나 들 것이며 묵을 것은 또 얼매나 필요허겄느냐? 양식언 내가 탁발로 댈 것이니, 널랑은 부처님 공양이나 안 거르게 허고 나무도 하루에 한 짐씩만 하면서 나머지 시간에는 소리공부를 하거라. 너도 보았을 것이다만, 쩌그 재만 하나 넘으면 불암폭포가 있제? 거그가 비가 오나 가뭄이 드나 물이 일정혀서 소리공부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니라. 우선은 득음부터 하자. 다행히 네가 소리의 기본은 익혔으니, 폭포를 뚫을 소리만 얻으면 될 것이니라.”
월광선사가 지팡이로 봉우리 너머를 가리켰다. 거기에 불암폭포가 있다는 것을 흥록이도 알고 있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 조용한 날은 암자까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폭포였다. 다음날 나뭇지게를 짊어지고 나서는 흥록에게 월광선사가 말했다.
“나무는 가까운 곳에서 하고 소리는 폭포에 가서 하거라. 내가 법당에 앉아 네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그날이 네가 소리를 얻는 날일 것이니라.”
‘그런 날이 있을랑가 모르겄구만요.’
송흥록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암자를 나섰다. 선사의 말대로 가까운 곳에서 나무 한 짐을 해놓고 바로 봉우리를 넘어 폭포가로 갔다. 수십 길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파르르 떨 만큼 웅장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폭포 위에 서자 오직 떨어지는 물소리뿐, 새소리며 바람소리며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하나 들리지 않았다. 목을 풀 요량으로 젊어 청춘 좋은 그때, 하고 백발가를 시작했으나 물소리에 휩쓸려 떠내려가 버리고 자신의 귀에도 소리가락이 들리지 않았다.
하이고, 바위에 계란얼 치라고 허제. 사람의 소리가 어뜨케 저 폭포럴 이겨묵을 수 있단 말인가.
송흥록이 털썩 바위위에 주저앉아 소리할 생각은 않고 폭포소리에 귀만 기울였다. 한나절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돌아오자 밤 내내 폭포소리가 귀청을 두드리고 가슴을 울렸다. 그러나 다음날도 송흥록은 폭포를 찾아갔다. 가봐야 입 한 번 벙긋도 못하고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월광선사의 눈치가 보여 안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보름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나뭇지게를 지고 나서는 흥록을 월광선사가 불러 세웠다.
“인자는 소리를 시작헐 때가 되었니라. 그만큼 들었으면 니 귀가 폭포소리를 제대로 알아들었을 것이니. 또한 네 소리를 네 귀가 들을 때도 되었니라.”
월광선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폭포위에 서서 젊어 청춘 좋은 그때, 하고 입을 열자 귀를 찢겠다고 덤비는 물소리 속에서도 모기 소리만한 자신의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송흥록은 폭포를 찾아다녔다. 여전히 밤으로는 선사에게 글을 배우고 춘향전이며 흥부전을 펼쳐놓고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이랄지, 소리로 부르기에 어려운 부분을 쉽게 풀어쓰는 일을 하면서도 낮으로는 폭포를 찾아갔다. 월광선사는 글을 가르치고 사설 옮기는 일을 거들어주고 가끔은 흥록의 소리를 그 부분은 이래야 하느니라, 저 부분은 저래야 하느니라, 하고 가르쳐 줄 뿐, 아버지 송 첨지처럼 북장단을 맞추어 준다든지, 북채로 어깻죽지를 후려치는 일 한 번 없었다.
월광선사가 폭포로 송흥록을 찾아온 것은 백운암에서 소리공부를 시작한 지 십년 째 나던 어느 날이었다. 송흥록이 사또의 수청을 거절한 성춘향이 모진 형장을 맞으며 십장가로 하소연하는 대목을 부르고 이마에 흠씬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있는데, 그만하면 되었니라, 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np남원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