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무엇이냐? 창이 무엇이더냐? 우주만물의 소리가 아니더냐? 내가 너한테 숱하게 말혔다만, 니가 니 소리에 담아야 헐 것들은 우주만물 삼라만상의 울음소리며 웃음소리, 도란도란 얘기허는 소리가 아니더냐? 사람살이의 즐겁고 슬프고 노허고 기쁘고 적적헌 것들이 아니더냐? 한 마리의 새가 울 때에 그 새가 왜 울며 슬픔의 정도는 얼마만큼인가, 골짝물이 골골골 흘러갈 때에도 그 물이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흘러가며 바위럴 감돌아 휘돌아 흘러감서 바위와 무신 얘기를 허는가 잘 들어두었다가 니가 니 소래에 담아내야 헐 것이 아니더냐?”
폭포소리 속에서 느닷없이 스승 월광선사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송흥록이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달이 중천에 밝은 밤이었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구룡폭포의 아홉마리 용은 온몸을 꿈틀거리면서 힘차게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승천을 하다가 달빛을 만나면 비늘들이 은빛으로 우수수 떨어지다가 바위를 치며 내리는 물을 만나면 다시 한 번 솟아올라 계곡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었다.
소리꾼의 소리가 폭포를 이겨야 겨우 소리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고 가르쳐 준 것도 스승 월광선사였다. 아버지 송 첨지의 혹독한 매질을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온 송흥록이 사흘을 굶은 끝에 산모롱이 오솔길에 허기져 쓰러져 있는데, 탁발을 나왔다가 돌아가던 월광선사가 발견한 것이었다. 송흥록의 나이 열두 살 때였다. 한눈에 흥록의 비범함을 알아본 월광선사가 너, 나와 함께 가려느냐? 하고 손을 잡아 일으켰다. 지긋지긋한 소리공부와 아버지의 매질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에 송흥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월광선사는 전라도 백운산의 백운암이라는 작은 암자에 행자도 없이 혼자 기거하고 있었는데, 도착한 다음날부터 흥록은 그의 행자가 되어 물 긷고 나무하기며 하루 세끼 공양을 지어 부처님께도 바치고 선사에게도 올리는 불목하니가 되었다. 그리고 밤이면 선사 앞에 앉아 글공부를 했다.
송흥록이 다시 소리를 시작한 것은 백운암에 온 지 반년 만이었다. 어느 날 암자 뒤로 나무를 갔는데, 느닷없이 고향집 생각이 나면서 입에서 저절로 춘향가 중에서 성춘향이 한양으로 올라간 이몽룡을 그리워하는 대목이 흘러나온 것이었다. 소리란 것이 원래 그렇듯이 처음에는 콧소리로 흥얼거리다가 자기도 모르게 커지고 그러다가는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소리가 되었는데, 그리움을 견디지 못한 춘향이가 베갯잇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대목을 부르다가 자기도 모르게 흑흑 하는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송흥록이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마음 놓고 울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느닷없이 과연 타고난 소리구나,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았구나, 하는 고함이 뒤에서 들려왔다.
월광선사였다. 송흥록이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쓱 닦으며 일어서자 월광선사가 말했다.
“오늘부터는 나한테 글공부만이 아니라 소리도 공부하거라. 네가 소리를 잘하기는 헌다마는 아직도 멀었니라. 소리를 하려면 첫째 말의 길고 짧음과 소리의 높낮이를 제대로 알아야 하느니라. 귀성이 낀 소리, 맵시 있는 너름새, 다섯 가지 소리의 차이를 정확하게 구별하고, 언제 어디에서도 자유자재로 내지를 수 있는 목을 얻어야 하느니라. 또한 네가 부르는 소리는 사설이 확실하지가 않느니라. 그것이 네 탓은 아니다만, 기왕에 네가 내게 글공부도 하고 있으니, 앞으로 네가 춘향가며 흥부가며 하는 것들의 사설도 본대있게 정리를 해야 할 것이니라. 그것이 먼 훗날의 일이긴 하다만 뒷사람들을 위해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니라.”
월광선사가 신뢰를 가득담은 눈빛으로 송흥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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