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하늘을 우럴어 한 점 부끄럼도 없는 <5>
대왕대비와 함께 조정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는 한명회를 탄핵하며 벌주라는 자광의 상소는 궐을 벌집 쑤신 듯이 들쑤셔 놓고 있었다. 더구나 조정 대신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거의가 한명회의 수족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명회의 말 한마디면 당장 벼슬이 잘릴 판이니, 생선가게에 파리 끓듯이 들고 일어나 자광을 헐뜯고 나왔다.
“얼자 주제에 감히 상당군을 모함해?”
“이번에는 아예 유자광을 참수를 시켜 버립시다.”
대왕대비 앞이나 한명회 앞에서 충성다툼이라도 하듯이 입을 놀릴 뿐, 실상은 상감 앞에서는 자광을 벌주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상감의 입장에서는 자광의 말이 백번 옳았기 때문이었다.
자광의 상소에 상감은 다만 ‘지나간 일을 어찌 다시 논하는가?’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상감은 대왕대비와 세분이나 계시는 대비들과 자신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한명회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자칫 유자광의 손을 들어준다면 대왕대비와 대비들에게 불경을 저지르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상감이 자신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상소를 한 마디로 묵살하고 나오자 자광이 다시 목욕재계하고 상소문을 썼다.
비록 대왕대비가 김질이 음해하여 죽이려할 때 ‘무령군은 절대로 역모를 할 사람이 아니다. 조정에 무령군만한 충신이 없다’고 상감을 설득하여 자신을 살려주기는 했지만, 이제 성년이 된 상감에게 정사를 넘겨주는 것이 도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상감은 ‘긴요하지 않은 말은 많이 할 필요가 없다’면서 자광의 상소를 묵살하는 체 했다.
그런데 일은 엉뚱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대간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었다.
실상 자광이 올린 상소는 대간들의 몫이었다.
한명회가 대전에서 내뱉은 망언은 대간들이 먼저 탄핵하고 나왔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왕대비와 한명회의 눈치를 보느라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상감에게 직언을 고할 의무도 없는 자광이 먼저 그 일을 들추고 나왔으니, 대간들로서는 하늘보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된 셈이었다.
대간들이 자신들의 직무유기를 내세우며 일제히 올린 사직상소를 돌려주고 난 상감이 자광을 선정전으로 불러 들였다.
두 번 째 상소를 올린지 여드레 만이었다.
상감이 물었다.
“어찌하여 그런 상소를 올렸는가?”
“조정의 원로대신으로 한명회의 전횡이 너무 심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이 그러한가?”
“노산군이 나이가 어렸는데도 도와서 보호해 줄 사람이 없었다는 말과 전하께 정사를 돌리는 일이 백성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그러하옵니다. 노산군을 들먹인 것은 신하로써 나라를 근심하는 뜻이 아니기 때문에 감히 품은 생각을 털어서 아뢴 것이옵니다.”
자광의 말에 상감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신하가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디에다 쓰겠는가? 짐이 상소를 보니 말한 바의 지적이 잘못되었기에 경이 잘못하였다는 것이다.”
자광이 말했다.
“신이 얼자로 나라의 후한 은혜를 받아 지위가 여기에 이르렀으니, 무릇 품은 생각이 있는데도 제 안위만을 염려하여 입을 다문다면 성상의 은혜에 만에 하나도 보답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직언하고 숨기지 아니 하였사옵니다. 신도 또한 제 말에 잘못이 있음을 알고 있사옵니다.”
상감이 말했다.
“훈구대신인 한명회를 중국시황제 때 간신인 조고에 비유하였는데, 조정에서 누가 상당군을 조고라고 하였는가?”
자광이 대답했다.
“소신이 한명회를 조고라고 한 것이 아니오라, 한명회의 처사가 조고와 같이 잘못된 것이었기에 드린 말씀이옵니다.”
“한번 역사에 기록되면 만세에 전해져서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이후로는 마땅히 참작하여 말하도록 하거라.”
상감의 말에 자광이 대답했다.
“한명회는 우연히 이런 말실수를 한 것이 아니옵니다. 신이 일찍이 입시하여 정사를 볼 때에 대간이 이조낭관들이 부묘의 집사에 다 임명된 것을 죄를 주라고 청하였을 때에도 한명회는 주상 전하의 ‘어찌하여 다 임명되었는가?’ 하는 하문에 한명회가 ‘여러 관사의 관원으로 임명하자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하고 거짓을 고하였사옵니다. 한명회의 죄는 나라의 백성들이 함께 분노하고 한스럽게 여기는데, 신이 어찌 말하지 않겠사옵니까?‘
상감이 말했다.
“내가 경의 말을 잘못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글의 사연이 사실보다 지나쳤기 때문일 뿐이다. 앞으로는 일을 당하거든 가려서 말하도록 하거라.”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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