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이미 어두워 졌고, 승정원에는 이극중과 한계순이 입직하고 있었다.
“이 시각에 유참지가 무슨 일이요?”
평소에 자광을 업신여기던 승지 이극중이 심드렁한 낯빛으로 물었다.
“급히 아뢸 일이 있어 왔습니다.”
“이 밤에 급히 아뢸 일이 무엇이요?”
승지 한계순 역시 ‘저 얼자가 무슨 수작이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자광이 목소리를 낮추어 남이가 두 번이나 자신을 찾아와 했던 말을 들려 주었다.
“그것이 정말이요? 남이가 정말 광망을 들먹였단 말이요?”
“제가 어찌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남판서가 누굽니까? 세조 때에 좌의정을 지낸 권람의 사위이며 세조대왕과는 고종 사촌간이 아닙니까? 자칫 모함을 하였다가는 제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자광의 말에 한계순과 이극중의 낯빛에 비로소 긴장감이 돌았다.
“이 일을 상감께 아룁시다.”
이극중이 단안을 내렸다.
한계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당장 주상전하께 가십시다.”
“그럽시다. 자칫 때를 놓치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요. 유참지가 이 일의 내막을 잘 알고 있으니, 상감께 고하도록 하시오.”
세 사람은 상감이 머물고 있는 수강궁으로 갔다.
환관 안중경이 범상치 않은 모습의 세 사람을 찬찬히 살폈다.
이극중이 말했다.
“남이의 일로 유참지가 전하께 아뢸 일이 있어 왔소. 고하여 주시오.”
안중경이 고하자 상감이 자광을 불러 들였다.
“밤이 이미 깊었는데 무슨 일이시오? 유참지.”
자광이 엎드리자 상감이 물었다.
“겸사복장 남이의 말이 하도 놀랍고 황당하여 일각이 여삼추로 달려 왔나이다.”
“놀랍고 황당하다?”
“예, 전하. 남이가 역모를 계획하고 있나이다.”
“남이가 역모를?”
순간 어린 상감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자광이 며칠 전의 일과 조금 전 자기 집으로 찾아와 남이가 했던 말을 자세하게 아뢰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상감이 물었다.
“밤에 갑자기 부르면 남이가 의심하여 도망을 가거나 역모를 앞당길지도 모릅니다. 하오니, 날이 밝는대로 사람을 시켜 명패를 가지고 가서 부르면 올 것입니다.”
“옳지. 그렇게 하면 남이를 의심 없이 불러올 수 있겠소.”
상감이 고개를 끄덕이는 듯 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어찌 밝은 날을 기다리겠소. 여봐라. 이극중과 한계순을 들라하라.”
두 사람이 들어오자 한계순에게 명하였다.
“사복장 이복에게 일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남이를 잡아오게 하시오. 또한 도총관 노사신과 강곤, 병조참판 신승선을 불러 입직하게 하라.”
“예, 전하. 분부대로 따르겠나이다.”
부랴부랴 달려 온 신승선에게 상감이 명하였다.
“도총부에 명하여 군사로 하여금 갑옷을 두르고 궐문을 지키게 하고, 입직한 위장으로 하여금 병장기를 정돈하여 각소를 지키게 하고, 병조에서는 군사를 나누어 도성문과 성을 지키게 하시오.”
급한대로 명을 내려놓은 상감이 이어서 밀성군 이침, 하동군 정인지 등 여러 종친들과 대신들을 부르고, 곧이어 환관 안중경을 시켜 덕원군 이서, 영순군 이부와 우참찬 윤필상을 불러 들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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