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감은 격의 없이 이준에게도 술잔을 건넸고, 남이에게도 술잔을 건넸는데, 이준에게 술잔을 먼저 건넨 상감한테 섭섭했던 모양이었다.
몇 잔의 술을 마시고 난 남이가 상감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전하, 소신이 북쪽의 변경에서 오랑캐와 싸울 때에 읊은 시가 있사옵니다. 그걸 한번 읊어도 되겠사옵니까?”
“어디, 들어 보자꾸나. 천하를 호령하던 남이의 시가 궁금하구나.” “하오면 읊겠사옵니다.”
남이가 좌중을 천천히 둘러보고, 상감을 향해 시를 읊었다.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말리리라. 남자 나이 스무살에 나라를 평안하게 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겠는가?”
남이가 시 읊기를 마치자 상감이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남이의 기개가 우러나는 시로구나. 그 시를 듣고 있자니, 오랑캐를 쫓아 북쪽 평원을 달리는 남이의 용맹이 떠오르는구나.”
“그렇사옵니다. 특히 남아이십미평국이면이라는 대목이 남이의 기개와 호걸다움이 드러나는 압권이옵니다, 전하.”
좌찬성 김국광이 허리를 조아리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나왔다.
그러나 그 순간 자광의 가슴으로 서늘한 기운이 스쳐갔고,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남아이십미평국은 남자 나이 스무살에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도 되지만, 남자 나이 스무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었다. 나라를 평정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 자신이 1인자가 되어야겠다는 뜻이 아닌가?
‘남이가 참으로 위험한 인물이구나. 참으로 어리석은 인물이구나. 비록 술이 취했다고는 해도 자신의 욕심을 천하에 드러내다니.’
그런데 정작 남이의 다음 행동이 가관이었다.
상감 앞에 술잔을 내밀고 말했다.
“전하, 소신에게 술 한 잔 더 내려 주시옵소서.”
“오냐, 그러마. 내 술을 받고 오늘 저녁에는 맘껏 즐기거라.”
상감이 내린 술을 단숨에 비운 남이가 불쑥 말했다.
“전하께서 귀성군 이준을 지나치게 사랑하시니, 신은 그윽히 그르게 여깁니다.”
“뭐라? 짐이 그르다?”
“그르십니다. 어진 임금은 신하를 고루 아낀다고 하였습니다. 하온데 전하께오서는 귀성군만 유독 아끼십니다.”
“네가 참으로 방자하구나. 귀성군은 지친이고 또 큰 공이 있으니 귀성을 아끼지 않고 누구를 아끼겠는가? 네 말은 분명 뜻이 있을 것이다. 누구와 상의 하였느냐?”
“다른 사람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상감이 좌찬성 김국광에게 말하였다.
“남이를 끌어다 의금부 옥사에 가두도록 하거라.”
남이가 의금부에 끌려 가면서도 횡설수설 했다.
누구도 남이를 변호하고 나서는 자는 없었다.
상감이 분노한 얼굴로 좌우를 둘러보며 일일이 물었다.
“귀성군만 아낀다는 남이의 말이 옳으냐?”
이숙기가 대답했다.
“아니옵니다. 심히 옳지 못하옵니다.”
“너의 무리도 이와같은 말을 발설하겠느냐?”
“신은 남이가 아니온데 어찌 남이의 망령된 말을 발설하겠사옵니까?”
상감이 자광을 불러 물었다.
“남이의 말이 옳으냐? 네가 보기에도 짐이 귀성군만을 아끼더냐?”
자광이 허리를 굽히고 대답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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