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정신을 차린 자광이 형 자환의 서탁에서 한양에 살고 있는 유씨 문중의 친척들이 살고 있는 주소가 적힌 서첩을 찾아냈다. 우선은 안국방에 살고 있는 친척들에게 머슴을 보내 ‘자헌대부유자환’의 부고를 전했다.
사흘 동안 한양의 손님을 받고 나흘째 나던 날 관을 남원으로 옮기기로 하고 형수 윤씨와 상의를 했다.
“아씨, 마님. 내일 대감마님을 남원으로 모실 것입니다. 이미 사흘 전에 남원으로 사람을 보냈으니까, 초상치를 준비는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알아서 하거라. 아녀자인 내가 무엇을 알겠느냐?”
윤씨의 얼굴에는 작은 슬픔도 서려 있지 않았다. 삼베로 지은 상복은 입고 있었지만, 손님이 와도 무심했고, 문중의 아녀자들이 몰려와 음식을 장만하고 있는데도 일체 들여다 보지 않았다.
발인 전 날이었다.
계집종이 자광을 찾아와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서방님, 아씨마님께서 안 계십니다.”
“무슨 소리냐?”
자광이 물었다.
“조금 전에 상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 입으시더니, 귀중품이 든 보따리 하나만 들고 몰래 뒷문으로 나가셨습니다.”
“그 말을 아무한테도 하지 말거라.”
자광이 계집종의 입을 단속하였다.
다음날 관을 마차에 싣고 한양을 출발할 때에야 미망인이 사라진 것을 안 친척들이 윤씨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런 친척들에게 자광은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자환의 장례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가 없었다. 친척들 조차도 자광을 얼자 취급이었고, 장례에 나서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원까지는 어차피 동행을 해야 했다.
다른 하인들처럼 관의 뒤를 따랐다.
한양에서 남원까지는 스무날이 걸렸다.
누른대 뒷산에 자환을 묻고 삼우제까지 지낸 다음이었다.
친척들이 다 돌아가고 집안이 조용해 졌을 때였다.
아버지가 자광을 사랑으로 불러들였다.
“건춘문의 갑사노릇을 하고 있다고?”
“예, 아버지. 경복궁의 동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일이 네 성에 차더냐? 만족할 수 있었느냐?”
아버지가 그리 물으시는 까닭을 짐작하고 있는 자광이 침묵을 지켰다.
“신분의 벽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결국엔 발버둥만 치다가 허망하게 끝날 수도 있다. 현 상감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는 상왕까지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영월로 귀양을 보냈다가 무참히 살해하고 말았다만, 그래서 등극하신지 열 세해가 되도록 반란이 끊이지를 않는 것이 아니더냐?”
“반란이라니요? 아버지.”
“함경도의 호족인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켰다는구나. 그만큼 왕권이 안정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겠느냐? 문상을 왔던 남원 사또한테 들었다.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켜 한양이 어수선하다고 알려 주더구나. 자광이 너는 어찌하려느냐?”
“한양으로 가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네 무예라면 반란통에 살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니라. 허나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언제나 너를 낮추거라. 남 앞에서 네 학문을 낮추고, 남 앞에서 네 무예를 낮추거라. 사내라면 때로는 자신을 과시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만,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아버지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한양으로 떠나겠습니다.”
“그러거라. 말을 타고 가거라.”
“아닙니다. 말을 타고 가나 제 걸음으로 달려가나 마찬가집니다. 사흘이면 한양에 당도할 것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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