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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세미나로 춘향제 정체성 확립하고 영정 문제 해결해야
93년동안 이어졌다는 춘향제, 무엇이 93년동안 이어졌을까? 춘향에 대한 제사다. 1931년 선조들이 사당을 짓고 영정을 모신 뒤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게 춘향제의 시작이다. 그리고 일제의 탄압에도 6.25 전쟁 때도, 박정희 군사 쿠테타 시기에도 다른 건 하나 못 해도 절대 빠뜨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낸 것이 바로 제사다. 즉, 춘향제의 핵심이 제사라는 말이다.
춘향 제사는 처음부터 위패가 아니고 영정을 모시고 지냈고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것이 전통이다. 그 전통을 잘 이어나가야 춘향제가 문화재가 되고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아무 영정이나 봉안해서는 안 되고 아무렇게나 그려서도 결코 안 된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봉안한 영정은 망측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이 영정을 그린 김현철 작가가 남원시를 모욕한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경력도 화려하고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수준 높은 영정 전문 화가가 아주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이렇게 그렸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1. 김현철 작가는 “판소리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와 경판본 <춘향전>의 첫 대목에 등장하는 5월 단오일을 맞아 몸단장을 한 채 그네를 타기 위해 나오는 17살 안팎의 18세기 여인상”을 그렸다고 말했다. (전라일보(2023.5.30)
춘향전의 첫 대목이라면 이도령을 만나기 전이니 당연히 춘향이가 붉은 댕기 머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영정은 결혼한 부인처럼 머리를 올리고 큰 대나무 비녀를 꽂고 있다. 또한 그네를 타기 위한 복장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로 폭이 넓은 치마를 입고 있다. 춘향 그림 그리기 대회에 나오는 초등학생들도 그네 타러 가는 춘향이를 그렇게 그리지 않는다.
2. 이 그림은 누가 봐도 신윤복의 미인도를 차용한 것이다. 명화를 차용하는 자체는 표절도 불법도 아니라고 한다. 다만 신윤복의 미인도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옷을 벗으려고 저고리 고름을 풀고 있는 에로틱한 기생 그림(오주석의 한국의 특강)’이기 때문에 문제다. 춘향이는 기생이 아니며 단 한번도 기생 노릇을 한 적이 없고 오로지 ‘열녀’로서 추앙받아 제사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춘향이를 기생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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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가는 춘향 영정의 얼굴을 ‘17세 안팎의 18세기 여인상’이라고 했고 남원시는 남원의 여고생(고3) 일곱 명의 사진을 찍어 보냈다. 18세기 여인상을 그리면서 왜 21세기 여학생들을 모델로 했는지 의아하다. 또한 새 영정은 누가 봐도 17세 안팎의 젊은 여인이 아니라 40대 이상의 여인이다. 이 그림의 실제 모델이 된 여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얼마나 모욕감을 느낄지 짐작이 간다.
4. 한편, 이번에 실시한 춘향영정 봉안식은 우리나라 전통 사당에서 하는 봉안식이 아니라 일본 신사에서 하는 입혼식이었다. 일본 축제 ‘마츠리’의 핵심은 가마에 신의 형상을 올리고 긴 끈을 앞뒤로 매달아 수많은 사람들이 끌고 신사까지 가는 행진이다. 춘향제에서 이 의식이 행해진 것은 1939년 반민족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춘향상이 들어올 때였다. 그 때부터 일제가 춘향제를 ‘내선일체(일본과 조선은 하나다)’에 악용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 형식을 똑같이 따라하면서 ‘봉안식’이라고 했다. 봉안식과 입혼식을 구분하지 못하고 일본의 신사 의식을 따라 한 문화원은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반드시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5. 현재 춘향 사당에는 친일 잔재로 보이는 요소들이 다섯 개나 남아 있다.(유튜브 ‘춘향사당’ 검색) 작년 가을, 이 문제가 전국에 보도되었고 그 때 남원시는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남원시는 그 어떤 조취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 그린 춘향 영정을 그 사당에 그냥 올려 버렸다. 그것도 일본 신사에서 하는 입혼식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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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제는 일제강점기에 말살되어가는 우리 민족의 얼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선조들이 창조해 낸 위대한 민족축제였다. 그러나 현재 춘향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우리 민족 문화와 정신을 지키기는 커녕 자칫 남원이 ‘친일 도시’로 낙인찍힐 일까지 만들고 말았다. 그러니 어찌 조상들과 후손들에게 고개를 들겠는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춘향제를 제대로 연구한 연구자들을 불러 깊이 있는 학술세미나를 개최해 춘향제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날카롭게 대립해 온 시민들만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적극 관심을 가지고 누가 왜 춘향제를 만들었고 어떻게 변질되어 여기까지 왔는지 정확히 따져보고, 다시 원형을 찾아 놔야 다시는 이런 혼란을 겪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춘향제의 정체성이 확립되면 영정 문제도 자연히 해법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역사를 한발짝 진보시킬 냉철한 이성과 지혜를 가진 남원 시민들의 용기있는 ‘도전과 응전’을 기대한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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