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애는 늘 그런 식이었다.
한 마디 툭 던지는 것이 나중에 깨닫고 보면 가르침이었다.
“네 마음이 가벼워지면 몸 또한 새털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그 가벼운 몸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하거라. 네 머리가 발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발이 저절로 움직이게 만들거라.”
그것은 무념무상이었다. 지리산의 봉우리를 오르고 내릴 때에도 ‘내가 지금 삼도봉을 오르고 있구나’ 의식하지 않았고, 천왕봉에서 세석평전을 갈 때에도 ‘내가 지금 내려가고 있구나’ 의식하지 않았다.
자광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모두 평지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한 해가 훌쩍 지나 있었다. 눈을 뜨고 있으면 밤도 낮이었고, 눈을 감고 있으면 낮도 밤이었다.
그런 어느날이었다.
새벽같이 송림사로 내려 온 무애가 말했다.
“천왕봉에 가면 검이 한 자루 있을 것이다. 그걸 가져 오너라. 일출을 보고, 그 일출이 스러지기 전에 내 집으로 오너라.”
“예, 스승님.”
자광이 단숨에 천왕봉으로 달려 올라갔다.
동쪽에서 떠오른 해가 부챗살 모양의 빛살을 뿜어 올리고 있었다. 그 햇살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햇살 가운데서 햇살보다 더 반짝이는 빛이 있었다.
한 자루의 검이었다.
동쪽을 향한 날에서 베어지는 햇살이 자광의 눈을 쿡쿡 쑤시고 덤볐다.
자광이 검을 향해 세 번 절하고는 조심스레 뽑아 들었다.
‘이제서야 스승님께서 내게 진검을 쥐어 주시려는 모양이시구나.’
송림사에 들어온지 세 해가 지났을 때 목검대신에 진검을 들고 수련을 하고 싶다고 자광이 욕심을 내자 무애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은 진검을 쥘 때가 아니다. 목검만 들어도 네 안에는 살기가 넘쳐 흘러 검끝에서 반짝이고 있다. 네가 검을 들어도 살기가 없을 때 비로소 진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무애가 자광은 답답했다.
-스승님, 저는 도사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무사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루 빨리 얼자라는 굴레를 베어버리고 세상에 나가 무과라도 보고 싶으냐? 허나 너에게는 무과를 볼 자격도 없지 않느냐?
-문과가 되었건 무과가 되었건 그것을 볼 자격은 제가 만들어낼 것입니다. 무사가 휘두르는 무기 속에는 어차피 살기가 들어 있지 않습니까? 칼날에도, 창날에도 살기는 들어 있습니다. 가만히 서 있는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도 살기를 품고 있을 것입니다.
자광이 불만을 터뜨렸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구별도 없고, 밤과 낮의 구분도 없이 살고 있어 제법이다 했더니, 갑갑한 모양이구나. 떠나고 싶으냐? 세상에 나가 가진 재주를 마음껏 펼치고 싶으냐?
무애가 무심한 낯빛으로 물었다.
-아닙니다. 떠나고는 싶지만 떠나지는 않겠습니다.
-허면 그러그라. 내가 됐구나, 할 때까지는 진검을 욕심내지 말그라.
하루는 무형대사가 지나가는 말로 슬쩍 타일렀다.
-무애처사야말로 반은 도사니라. 달관까지는 아니라도 그 근처까지는 간 사람이다. 무애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목검이나 진검이나 검은 검이다. 너는 목검을 들고도 누군가를 베기위해 안달이 난 얼굴이다. 그것이 무엇이더냐? 살기가 아니더냐? 산짐승을 보고 침을 삼키는 것도 살기고, 원수를 향해 악한 마음을 먹는 것도 살기니라. 네가 무심한 마음으로 목검을 휘두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진검을 쥘 자격이 생길 것이니라. 무애는 그 때를 기다리고 있니라.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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