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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누른대 출신, 조선조시대 충신 유자광<22>2. 운명이 굴레를 벗기 위하여

하루는 무애가 말했다.

“자광아, 너 노고단 가는 길을 알고 있느냐?”

“몇 년 전에 노고단을 거쳐 천왕봉에 오른 일이 있습니다. 길은 알고 있습니다.”

“노고단에서 반야봉 쪽으로 한 마장 쯤 가면 바위가 하나 사람처럼 앉아 있는데, 거기 엉덩이 밑에 내가 단검을 하나 놓고 왔구나. 가져다 주겠느냐?”

“바로 다녀 오겠습니다.”

자광이 쏜살같이 달려 단검을 가져다 주면 무애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달리기를 제법 하는 줄 알았더니, 아직은 멀었구나. 반야봉에 다녀오는 데 한나절이 걸리다니.”

어떤 날은 임걸령에 가면 무엇이 있으니, 가져오라 시켰고, 또 어떤 날은 토끼봉 정상에 무엇이 있으니, 가져오라고 시켰다.

자광이 통천문에서 노고단까지 반나절에 다녀오게 되었을 때 무애가 말했다.

“그만하면 한양길도 사흘이면 되겠구나. 자광아, 보거라.”

무애가 소매춤에서 단검을 꺼내는가 싶더니,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낙엽송의 끝가지를 향해 던졌다.

단검은 낭창낭창 늘어져 있는 낙엽송 가지 끝에 정확하게 박혔고, 무애가 눈짓으로 가리켰다.

“자광아, 저 단검을 내려다 주겠느냐?”

“예, 스승님.”

자광이 두 손으로 나무 둥치를 안고 두 발로는 미끄러내리지 않게 버티면서 조심조심 올라갔다. 그러나 중간에도 미치기 전에 몸둥이가 주루룩 미끄러져 내려와 버렸다. 둥치에 참기름이라도 발라놓은 듯이 나무는 미끄러웠다. 발에다 힘을 주면 손이 미끄러졌고, 손에다 힘을 주면 발이 미끄러져 내렸다.

“허허, 그놈. 동작이 제법 민첩하기에 나무도 잘 타는 줄 알았더니, 맹탕이구나.”

무애가 질책을 했다.

자광이 그리 자신 있으면 스승님께서 올라가 보십시오,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한 쪽으로 비켜 주었다.

무애가 말없이 나무를 부등켜 안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끝까지 올라가 단검을 가지고 내려왔다.

“손과 발에 번갈아 가며 힘을 주거라. 발에 힘을 줄 때는 손을 움직이고, 손에 힘을 줄 때에는 발을 끌어 올리거라. 그 균형을 잘 맞추면 다람쥐처럼 나무를 잘 탈 수 있을 것이다. 이 단검을 가지고 내려 오너라.”

무애가 조금 전보다 더 키가 큰 낙엽송 가지 끝에 단검을 꽂아놓고 핑 내려가 버렸다.

그것을 혼자 연습을 하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자광이 한나절 내내 나무타기 연습을 했다. 겨우 단검을 손에 쥐었을 때는 손바닥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해는 산능선 너머로 제 모습을 감추는 중이었다.

‘큰 일 났구나. 스승님의 점심공양을 걸렀구나.’

저녁공양이라도 가져다 바치려고 자광이 허둥지둥 송림사로 돌아오자 무애가 무형대사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껄껄껄 웃었다.

“네 놈을 믿고 있다가는 꼼짝없이 굶을 판이라 내가 먼저 왔다. 그나저나 단검은 가져왔느냐?”

“예, 스승님.”

자광이 소매 속에서 단검을 꺼내자 무애가 말했다.

“사나흘은 걸릴 줄 알았더니, 제법이구나. 그놈은 네가 보신용으로 가지거라. 네 방을 보니 서책이 많더구나.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

“손자병법을 읽고 있습니다.”

“좋은 책을 읽고 있구나. 그 속에 인생을 사는 법이 다 들어 있니라.”

“전쟁터에서의 병법이 아니라 인생을 사는 법입니까?”

“사람이 산다는 것이 다 전쟁이 아니더냐? 삼국지는 읽어 보았느냐?”

“재미가 있어 세 번을 읽었습니다.”

“앞으로 일곱 번을 더 읽거라.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깨우쳐 줄 것이다.”

말 끝에 무애가 몸을 일으켰다.

“가십니까? 주무시고 가시지요.”

“아니다. 내 집이 편하다.”

자광이 뭐라고 한 마디 더하려는데 무애는 눈 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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