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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누른대 출신, 조선조시대 충신 유자광 <21>2. 운명의 굴레를 벗기 위하여 <8>

“하온데, 처사님은 누구십니까?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존함은 무슨...지리산 산지기한테 이름이 있겠느냐? 그냥 아무개라고 부르거라.”

“아까보니까 아무개처사님의 무예가 보통이 아니던데 저를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가 내 제자가 되겠다고?”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저에게 무예를 가르쳐 주십시오.”

자광이 엎드려 절하며 간절하게 청했다.

“허나 내가 할 줄은 알아도 남을 가르칠 줄은 모른다.”

“스승님께서 하시는 걸 따라 배우겠습니다. 제가 눈썰미가 있어 한번 본 것은 잊어먹지 않습니다.”

“좋다. 네가 원한다면 시범은 보여주마. 허나 조건이 있다.”

“무엇입니까? 따르겠습니다.”

“내가 그 동안에는 지리산 산짐승도 잡아 먹고, 정 밥이 그리울 때면 송림사 공양간을 찾아가기도 했다만, 앞으로는 네가 하루 세끼 송림사 공양간 밥을 가져다 줄 수 있겠느냐?”

“그리 하겠습니다.”

자광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래, 일출은 보았더냐?”

나무짐을 지고 송림사로 돌아오자 산문을 나서던 무형대사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그렇구나. 일출을 보겠다고 새벽같이 달려올라 간 천왕봉에서 일출은 못 보고 엉뚱한 사람을 스승으로 삼고 왔구나.’

자광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일출은 못 보고 백호를 보았습니다.”

“백호를 보았다고?”

“예, 대사님. 하루 세끼 송림사 공양을 배달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무애가 너를 제자로 받아 들이기로 했구나. 백호가 백호를 만났으니, 당분간은 지리산이 쩌렁쩌렁 울리겠구나.”

무형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분이십니까?”

“네가 얼자라는 굴레를 쓰고 있듯이 백정의 자식이라는 굴레를 쓰고 있다. 너는 얼자라는 굴레를 벗기 위하여 발버둥을 치고 있다면 무애는 그 굴레를 받아 들이고 순응하는 삶을 살고 있다. 제 어미를 백정의 아낙이라고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양반 하나를 때려 죽이고 지리산으로 들어 온 자니라. 지리산에 들어와 무애가 익힌 무예만 가지고도 조선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만, 백정이라는 허울이 그걸 막고 있구나. 아니, 살인자라는 업보가 괜찮은 무인 하나를 버려두고 있구나. 어차피 백호와 백호가 만났으니, 세세한 사연도 들려주는 것이다. 무애한테는 아는 체 하지 말거라.”

“예, 대사님.”

“무예를 배운다고 글 읽기에 소홀하지 말거라. 네 놈의 학문이 충분히 과거를 볼 만큼은 되는 줄은 안다만, 글을 어디 꼭 과거만을 위해서 읽는다더냐? 사람으로 살기 위해 읽는 것이지.”

무형대사의 말에 자광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글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벼슬아치로 살기 위해서 읽는 것입니다, 대사님.’

이날부터 자광은 하루 세 번씩 통천문 아래 바위굴로 무애의 끼니를 배달했다.

주로 소금으로 간을 한 주먹밥이었다.

그런데 무애는 주먹밥을 자신이 먹는 것이 아니었다. 소금기를 씻어낸 주먹밥을 바위굴 주변의 산짐승과 날짐승에게 나누어 주었다.

“저 놈들이 나에게 제 몸을 주니, 나는 저 놈들에게 내 밥을 주는 것이니라.”

“그렇습니까?”

“헌데 오다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 아침보다 반식경이 늦었구나.”

무심한체 해도 무애는 자광의 달리기에 시간을 재고 있었던 셈이었다. 어쩌면 자기에게 하루 세 끼 끼니를 배달하라고 하는 것도 무예수련의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자광은 생각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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