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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누른대 출신, 조선시대 충신 유자광<16>2. 운명의 굴레를 벗기 위하여

“네 심중에 있는 것을 꺼내어 보거라. 너는 도대체 왜 사느냐? 책은 무엇 때문에 읽으며 무술은 무엇하려고 단련하느냐? 얼자로 머슴노릇이나 하려면 구태여 그런 것들이 필요없지 않느냐?”

자광이 침묵을 지키자 유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사헌부 장령으로 있을 때에 부당한 처사를 하는 윗사람에게 바른 말을 했다가 권귀라는 사람에게 모함을 받아 군기부정이라는 자리로 좌천이 되었다. 그러나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결국 얼마 안 되어 아버지는 사헌부집의에 오르고 권귀라는 사람은 한직으로 좌천이 되었니라. 벌써 스무해 가까이나 벼슬자리에도 못 나가는 내가 너한테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을 알겠느냐?”

“소인, 모르겠습니다.”

자광이 말했을 때였다.

유규가 서상 위의 책을 들어 자광의 얼굴을 향해 사정없이 던졌다.

“이놈, 여전히 소인이구나. 내가 너한테 호부를 허용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소인이라 자처하느냐? 네 스스로 너를 얼자라고 여기면 너는 얼자일 수 밖에 없다. 나는 너를 한번도 얼자라고 생각한 일이 없느니라. 내가 너한테 얼자의 굴레를 씌워주지 않았는데, 네가 어찌 스스로 얼자의 굴레를 쓰고 있느냐?”

아버지 유규의 목소리는 나지막하나 힘이 넘쳤다.

“자광이 너도 내 아들이고, 네 동생 자형이도 내 아들이니라. 자환이나 똑같은 내 아들이란 말이니라. 나중에 네 어미를 첩으로 들이기는 했다만, 여종의 신분이었던 네 어미에게서 아들을 둘이나 본 것 또한 내가 네 어미를 내 부인으로 인정을 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사실이었다. 큰 부인이 죽고 난 다음에 할머니 남씨의 반대 때문에 안방으로 들이는 것은 미루고 있었지만, 남씨의 성화에도 새로이 부인을 들이지 않았다.

“하오나, 남원 사람들은 여전히 저나 자형이를 얼자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면 자광이 너도 내가 스무해 가까이나 벼슬자리에 못 나가는 것이 이 애비가 경주부윤으로 있을 때에 송사를 잘 봐달라고 뇌물을 가지고 온 백성을 때려죽였기 때문이라고 믿느냐? 너 또한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믿느냐?”

“사람들은 그렇게 수군거립니다. 부정을 저지르고 송사에서 잘 봐달라고 뇌물을 가지고 온 백성을 곤장으로 때려 죽일 만큼 청렴하고 강직하며 무서운 분이라고 합니다.”

“이 애비는 사람을 때려 죽이지 않았느니라. 사령놈이 너무 과한 형장을 칠 때에 말리지 못한 잘못은 있다만, 내가 직접 죽이지는 않았다는 말이니라. 헌데도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형장으로 죄인을 때려 죽인 무서운 사람으로 알고 있다. 사람들이 뭐라 말하건 네 스스로 얼자라는 굴레를 둘러쓰고 있을 필요가 없다.”

유규의 말투가 간절했다.

자광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하오면 제가 아버지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부르거라.”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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