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황이 과거에 급제하였다.
한양으로 간지 석달만에 돌아 온 자황이 과거급제를 알리는 홍패와 승정원 주서에 제수되었다는 교지를 아버지 유규 앞에 내어 놓았다.
“애썼구나. 무릇 벼슬아치란 마음이 청정해야 한다. 힘 있는 상관이라하여 아부하지 말고, 아랫 사람 앞이라고 거만해서는 안 된다. 아침 저녁으로 몸과 마음을 닦고, 혹시 네가 결정해야할 일이 있으면 백성을 먼저 돌아보거라.”
아버지 유규가 관복으로 정장을 하고 엄한 눈빛으로 당부했다.
“아버지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헌데 이상하구나. 교지에 어찌하여 유자황이 아니라 유자환으로 되어 있느냐?”
“소자, 아버지께 큰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상감의 큰 아드님이신 의경세자가 죽고나자 둘째 아드님이신 해양대군이 세자로 책봉되었는데, 세자저하의 이름이 황입니다. 장차 보위에 오르실 세자저하와 같은 이름자를 쓸 수 없다고 하여 제 이름자 황을 환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이 아비가 같은 경우를 당했어도 너와같이 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아비한테 큰 불효를 저지른 것도 아니니, 앞으로는 자환으로 부르도록 하거라. 족보에도 자환으로 올리도록 하겠다.”
그 말을 자광은 큰 사랑 토방 아래에서 듣고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아버지 앞에 홍패를 내밀 수 있는 날이 올까?’
자광이 북쪽 하늘을 올려다 보며 중얼거리는데 자환이 밖으로 나왔다.
“감축드립니다, 서방님.”
“고맙구나. 네가 부지런히 책심부름을 해준 덕분이니라.”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소인은 응당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인걸요.”
자광이 허리를 깊숙이 굽혔다.
“남원 사람들이 그런다고 하더구나. 학문으로 보나 무술실력으로 보나 네가 나보다 낫다고 말이니라.”
“그럴 리가 있습니까? 허무맹랑한 입놀림입니다.”
“내가 용담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거기 주지가 너한테 하는 말을 들었니라. 호랑이 상을 타고 났다고, 장차 조선을 몇 번은 들었다 놓을 것이라고 한 말을 내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니라.”
“소인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 서방님은 어찌 들으셨습니까?”
“내 앞에서까지 그럴 것은 없다. 난 처음부터 너를 내 동생으로 인정하고 있었니라. 어떠냐? 나랑 한양으로 가지 않으련?”
“지금은 아닙니다. 이따가...이따가 가겠습니다.”
자환이 과거를 보기 위하여 한양에 가 있는 동안 자광은 나름대로 작정해 둔 것이 있었다. 자광도 물론 한양으로 가고 싶은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환의 수발을 들기 위해서라면 할머니 남씨도 반대하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자환과 동등한 자격으로 설 수 있을 때에 한양으로 가자고 혼자 작정했다.
그것은 학문을 더욱 익히고, 무술을 연마하여 당당한 사내대장부가 되는 것이었다. 언제 어느 때 누구 앞에서라도 자신을 내세울 수 있을 때에 한양으로 가자고 다짐 했었다.
자환의 말대로 당장에 한양으로 간다면 평생을 하인으로 살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또 이따가라고 하는구나? 네가 싫다면 할 수 없지. 먼 길을 왔더니, 피곤하다. 너도 그만 들어가 자거라.”
자환이 작은 사랑으로 들어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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