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손에 돌멩이를 움켜쥐고 밤길을 걸은 일도 있었다. 아무리 캄캄한 밤이라도 손에 돌멩이만 하나 쥐고 있으면 왠지 든든했다. 그렇다고 새삼 호랑이 앞에서 돌멩이를 주워 들기도 멋쩍은 일이었다. 호랑이가 마음만 먹으면 돌멩이를 줍겠다고 허리를 굽히는 순간 뛰어내려 한 입에 목덜미를 물어 뜯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차피 호환을 당할 운명이라면 어쩔 수가 없지. 조선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놓을 팔자를 타고 났다는데 설마 호환이나 당할까?’
자광이 호랑이를 똑바로 올려다 보며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감히 내 앞을 가로 막아? 어서 썩 비키지 못하겠느냐?”
자광이 호랑이를 뚫어질 듯 쏘아보았다.
호랑이의 눈에서는 푸른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자광과 호랑이가 한식경 남짓 눈싸움을 계속하고 있을 때였다.
“그만하면 되었구나. 너는 네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런 소리가 바위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러자 호랑이가 슬며시 돌아서더니 풀쩍 뛰어내려 숲속으로 사라지고 대신 달빛 속에서도 누더기가 분명한 승복을 입은 누더기 대사가 나타났다.
“왔느냐? 너를 기다리고 있었니라.”
“소쩍새 소리에 끌려 왔습니다. 달빛에 홀려 왔습니다.”
“어떻게 왔건 무슨 상관이더냐? 너와 내가 이렇게 만났으면 되었지.”
무형대사가 풀쩍 뛰어내려 자광 앞에 섰다.
누더기 대사 무형의 몸에서는 향내가 풍겼다.
“제가 올 줄 아셨습니까?”
“몰랐다. 내가 네 놈 마음을 어찌 안다는 말이더냐?”
“하온데 어찌 나와 계셨습니까?”
“아까 그 놈이 일러주더구나. 배가 출출하던 참에 좋은 먹이감이 왔는데 먹어도 되는가 물어 보더구나. 그냥 먹으라고 하려다가 나와 보았더니, 네 놈이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고 있더구나.”
“흐흐, 저는 조금도 떨지 않았는데요?”
"그런 놈이 돌멩이를 찾겠다고 눈알을 굴려?“
내가 그랬던가? 자광이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돌멩이를 찾겠다고 눈알을 굴린 일은 기억이 안 났다.
자광이 아무 말도 안하자 무형대사가 돌아섰다.
“따라오너라.”
“예, 대사님.”
달빛을 밟으며 잠시 걸어가자 계곡 가운데에 부자집 마당만큼 넓은 바위가 나타났고, 바위 건너에서는 달빛에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있었다.
“이 바위가 바로 참선하는 송림사 중들을 잡아먹는 뱀이 나오는 자리니라.”
“저를 어찌 이곳에 데려오셨습니까?”
“너를 통해서 한 가지 시험을 해보고 싶어서였니라.”
“시험이요? 무슨 시험을 하지요? 대학이나 논어를 물어보실 건가요?”
“아니다. 정말 큰 뱀이 나와 중을 잡아 먹었는지를 알고 싶구나. 매월 보름이면 뱀이 나온다고 했으니, 어쩌면 오늘밤에 나올지도 모르겠구나. 네 놈이 여기에 좌정하고 앉아 중놈 흉내를 내고 있거라. 내 몸을 던져 시험을 해보고도 싶었다만, 목숨이 하나 밖에 없으니, 그럴 수도 없고. 이 바위가 지리산 천왕봉에서 흘러내린 좋은 기운이 뭉치는 곳이라 여기에 앉아 참선만하면 부처가 되는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더라만, 깨달음도 목숨이 있는 다음이 아니겠느냐? 나는 들어가서 잠을 잘터이니, 널랑은 먼동이 틀 때까지 앉아 있다가 저 아랫마을에서 첫닭이 울면 나를 깨우거라.”
자광이 미처 무어라고 대꾸도 하기 전에 무형대사는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대사님이 내 담력을 시험하고 계시구나.’
자광은 그리 짐작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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