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이 있었다.
자광이 일곱 살 때였다.
은어를 잡으려고 대나무발을 물 속에 넣고 있는데, 요천강을 가로지른 징검돌을 건너던 스님이 한참을 바라보다가 혼자 중얼거렸다.
-허참, 그놈 호랑이상이 분명하구나. 장차 조선을 몇 번은 들었다 놓겠구나.
그때는 무심코 지나치고 말았다. 스님이 중얼거린 말이 자신을 일컫고 있는 것이며 조선을 들었다 놓을 것이라는 말도 어렴풋이는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그걸 따져 물을 수는 없었다.
그 스님을 다시 만난 것은 과거공부하러 들어가는 형 자황을 따라 용담사에 들렀을 때였다.
주지 스님은 자황이 아니라 자광을 한참동안이나 찬찬히 바라보았다.
‘스님, 제가 정말 호랑이 상입니까? 조선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놓을 운명을 타고 났습니까?’ 그렇게 묻고 싶은 걸 겨우 참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저녁공양을 마치고 자황이 글공부를 시작하고 나면 자광은 실상 할 일이 없었다. 누른대 집으로 돌아가도 되었고, 아니면 요사채의 빈방을 차지하고 잠자리에 들면 되었다.
자광이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핑계김에 부처님 곁에서 하룻밤을 자고 갈까, 망설이다가 산을 둘러 보았다.
이제 막 떠오르는 열 사나흘 쯤의 달빛으로 산이 살아나고 있는 중이었다.
남원고을을 둘러싸고 있는 동서남북의 산들이 기지개를 켜며 꿈틀꿈틀 일어서고 있는 중이었다.
‘달빛 한번 환장하게 곱구나.’
자광이 중얼거릴 때였다.
법당 뒷산에서 소쩍새가 소쩍소쩍 울었다.
그 소리가 자광의 귀에는 자광아, 자광아, 하고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발이 저절로 산문을 나와 육모정 계곡 쪽을 향했다.
육모정을 지나면 아홉 마리의 용이 서로 엉켜 꿈틀거리는 형상의 구룡폭포가 나왔고, 구룡폭포를 지나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틀면 운봉현이었고, 오른 쪽으로 틀면 정령치가 나왔다.
정령치를 내려와 다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틀면 뱀사골이 나왔고, 오른쪽으로 틀면 노고단이 나왔다.
자광은 걸음이 빨랐다. 어지간한 사람은 달리기를 해도 자광의 보통 걸음을 따르지 못했다.
자광이 말귀가 트이고 난 다음에 숱하게 들었던 얼자라는 말이, 할머니 남씨의 호된 매질에 참을 수 없는 설움이 솟구칠 때면 그걸 삭히느라 산으로 들로 싸돌아 다녔다. 그짓을 되풀이하다 보니까 걸음이 바람처럼 빨라졌다. 남원 서쪽 만복사가 있는 교룡산은 한달음에 달려 올라갔다 내려오기도 했다.
달이 중천에 왔을 때 자광은 정령치 넘어 심원삼거리에 있었다.
자광의 발길이 망설임도 없이 왼쪽을 향했다.
꼭 송림사에 가야겠다는 작정도 없었는데, 달빛에 홀린 듯, 소쩍새 소리에 이끌린 듯 오다보니까 사람들이 하늘 아래 첫동네라고 부르는 심원삼거리에 다다른 것이었다.
자광이 반식경이나 걸어 내려왔을 때였다.
달이 산능선의 소나무 가지에라도 걸렸는지 얼핏 그림자가 지더니 서늘한 기운이 등골을 훑고 내려왔다.
자광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거기 바위 위에 호랑이 한 마리가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자세로 서 있었다.
온 몸에서 소름이 돋고 다리가 후둘거렸다. 손에 하다못해 돌멩이라도 하나 들었다면 무서움이 덜할텐데 자광은 맨손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np남원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