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광이 합장으로 인사를 올리고 물었다.
“주지 스님, 누더기 승복을 걸친 대사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누더기 대사님?”
“제가 오는 길에 잠깐 뵈었거든요. 용담사에 가신다고 하셨는데요.”
“중간에 마음이 바뀌어 정령치를 넘어 가셨겠지.”
“정령치요?”
“무형스님은 정령치 넘어 뱀사골에 있는 송림사라는 절에 계신다네.”
송림사라면 자광이도 형 자황과 함께 한번 다녀온 일이 있었다.
재작년이었다.
누른대 집에 들른 자황이 할머니 남씨한테 천왕봉에 한번 올라가 보고 싶다고 하자 할머니가 머슴 둘에게 먹을 것이며 덮을 것을 한짐씩 지워 딸려 보냈다.
노고단에서 하루 저녁을 자고, 이틀을 더 걸어 천왕봉에 올라 하루 밤을 묵고 내려올 때는 뱀사골 길을 택했다.
정령치 쪽 보다 가깝다고 하여 택한 길이었는데도 뱀사골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다 되어 있었다.
사람이 사는 마을까지는 서너식경을 더 걸어야할 판이었다. 맨 몸에 지팡이 하나만 든 자황이도 지쳤지만, 먹을 것, 입을 것, 덮을 것까지 짊어진 머슴들의 체력이 버텨내지를 못했다.
적당한 바위굴이라도 나타나면 잠자리를 정하려고 두리번 거리는데 계곡 사이에서 불빛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찾아가 하룻밤 신세를 진 곳이 송림사였다.
그날 송림사에서 누더기 스님은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누더기를 걸친 예사롭지 않은 스님이 송림사에 계시는 무형 스님이라고 하지 않은가.
“법명이 무형인가요?”
“형상이 없다는 뜻이지. 원래 그 분이 그렇다네. 있는가하면 없고, 없는가 하면 있는...그 분과 말씀도 나누어 보셨는가?”
“예, 그 스님이 제 마음을 훤히 꿰뚫고 계셨습니다.”
“좋은 인연을 맺은 것 같군. 그 분과의 인연이 참인연이라면 머지 않은 날 다시 만날 수 있을 걸세.”
참 인연이라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지 스님의 말이 자광의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형체가 없으시다는 무형스님을 내 스승으로 모시는 것이 어떨까?
그런 욕심도 생겼다.
“유처사, 마음이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것일세.”
“마음이 간절하면요?”
자광의 물음에 주지 스님이 대답했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 않던가?”
주지 스님이 그윽한 눈빛으로 자광을 찬찬히 살폈다.
그런 주지 스님에게 밤마다 찾아오는 백호를 얘기하고 싶었다. 떳떳하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를 날을 위하여 가슴에 품은 뜻도 털어놓고 싶었다.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장차 조선을 들었다 놓을 운명을 타고 났는가도 다시 한번 듣고 싶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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