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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측, “그러니까 대체 그 근거가 뭐냐” 해석오류 따지면
주류학자들, 어려운 학문적 기술로 자기 연구 성과만 주장
5일 진행된 ‘남원시 가야역사 학술토론회’에서 핵심 논쟁인 ‘기문가야’ 비정에 대해 주류학자들은 재야사학자들과 남원시민들이 주장하는 문제점 지적에 대해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덕일 교수가 “이것저것 다 각론하고, 그러니까 기문가야라고 비정한데 대한 그 근거를 한 가지라도 내놓아 보라”는 말에 그저 어려운 학문적 기술로 자신들의 연구 성과와 주장만 되풀이했다.
주제발표 이후에 이어진 쟁점토론은 대치적 논쟁이 더 극화됐다.
이도학 교수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사료를 고찰하면 임나와 기문국 이라는 명칭은 한반도에 존재했고 그 연원이 이어져 왔지만 일본서기 속 임나와 기문하고는 달라 섞일 이유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헌에 나타난 기문이 남원이냐는 것이 삼국사기 등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지명 비정을 포기할 수는 없고, 백제영역 하에 기문하가 있었고 섬진강과 남강 주변에서 기문국을 찾아야만 한다면 남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곽장근 교수는 가야 정치체의 위치 비정은 역사고고학의 범주에 속하며, 그동안 발굴 조사된 가야 유적과 유물, 복원된 전북 동부의 봉화로 등을 종합하면 운봉고원에 강력한 정치체가 존재했고 그것은 기문국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덕일 교수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역사서 자료들의 내용과 연대가 불일치한 점이 많고, 특히 일본서기를 부정한 듯 말하면서도 결국 일본서기 속 임나일본부와 기문을 한반도 남부에 대입하며 그때그때 말을 다르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남원을 기문으로 비정한데 대한 근거나 자료가 있으면 제시해보라고 추궁했다.
박찬화 연구위원은 기문에 대한 정확한 위치를 기록한 유일한 문헌인 신찬성씨록에 나오는 임나의 위치를 어디라고 생각하느냐며, 일본서기의 경우는 그 어디에도 기문이 남원이라거나 백제 기록을 인용했다는 근거가 없는데도 학계는 기문이 남원이라고 우기고 있어 결국 일본이 기뻐할 일을 우리 스스로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날 토론은 참석한 학자들의 연구와 해석이 각자 다른 입장만 확인하는 격전장이 되면서 결국 ‘왜 남원이 기문 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단지, 이번 토론회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역사적 사료와 내용이 주류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남원을 기문이라고 구체적으로 비정할 만한 근거나 타당성을 뒷받침하기에는 갈수록 의문과 의혹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날 토론에서 나온 박찬화 연구위원을 말이 핵심을 찌를 듯 해 적어놓는다.
어느 교수가 일본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일본에 가서 들은 말이라는데, 일본의 학자가 “우리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 하기 위해서 역사를 조작해 놓은 게 있는데 당신네들 당연히 한국이 해방되면 복원될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60년, 70년, 80년대가 되어도 그대로 있더라. 우리 일본을 탓하기 전에 당신네들 것을 먼저 봐라.”
그 교수는 그때 그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때 그 일본인이 한 그 말의 충격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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