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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누른대 출신, 조선조시대 충신 유자광 <9>1. 꿈에 백호를 만나다

아버지나 형은 호부호형을 허용했지만 어머니가 허용하지 않았다.

-자광아, 대감마님이나 도련님께 절대로 호부호형허지 말그라. 나는 네가 노마님께 매타작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구나. 어떻게 부른들 대수더냐? 네 이름에 문중의 항렬자를 붙여주신 것만으로도 이 어미는 황송해서 몸둘바를 모르겠구나.

어머니가 피멍이 든 등짝에 쑥을 찧어 붙여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이후 자광은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고, 형 앞에서 형님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대감마님이나 도련님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의사전달을 할 수 있었다.

형님 자황에게 서방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자황이 장가를 들고 난 다음부터였다.

자광이 얼자인 것을 안 형수 윤씨가 하루는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서방님을 서방님이라고 부르지 않느냐? 한번만 더 호칭을 잘라 묵으면 혼날 줄 알거라.

형수 윤씨는 시할머니 남씨나 시아버지 앞에서는 고분고분했지만, 부리는 아랫것들 앞에서는 찔러도 피 한방울 안 흘릴 만큼 무서운 상전이었다. 명색이 도련님인데도 자광이도 아랫것 취급이었다.

한번은 어머니한테 ‘작은 사랑 형님’이라는 호칭을 썼다가 형수 윤씨한테 부지깽이로 어깨죽지가 무너질 만큼 호되게 맞았다.

그날 이후 자광은 자황을 서방님이라고 깍듯이 불러주었다. 형수 윤씨 앞에서는 더욱 큰소리로 불렀다.

이날도 자황은 서방님이라 부르는 자광한테 형님이라 부르라고 지적해준 것이었다.

“이따가, 이따가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이따가?”

자황이 물었다.

자광이 입속으로 대꾸했다.

‘예, 제가 형님을 형님이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을 때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그것은 무슨 수를 쓰건 벼슬자리에 오르는 일이었다.

사흘거리로 백호가 꿈에 나타나고 사서와 삼경이 천자문처럼 쉬워졌을 때부터 자광이 작심한 일이었다.

“과거 소식은 없다더냐?”

자황이 물었다.

“대감마님께서 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알겠다. 나가 보거라.”

자황이 대학을 펼쳐드는 것을 보며 자광이 방을 나왔다.

누더기 스님을 찾아볼까하고 법당 뒤로 돌아가려는데, 주지 스님이 법당에서 나오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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