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의 말씀 잘 새기겄구만요. 헌디, 이 길이 참말로 길고 험하구만요이. 달궁에서 정령치럴 넘어 육모정으로 빠지는 길보다 더 구비가 많은 모냥인디요.”
이화중선이 주먹으로 무릎을 토닥이며 말했다.
“인자 몇 구비나 돈 것 같으냐?”
“글씨요. 스승님 말씸에 빠져 세어보지는 못혔지만 그럭저럭 아흔구비넌 돈 것 같은디요.”
“그려? 허면 다 왔구나. 아매도 내 짐작이 맞다면 저 구비만 돌아가면 운봉일 것이니라.”
“그래도 달이 있어 넘어지지 않고 왔구만요.”
“참, 고마운 일이제. 화중선아, 너도 캄캄헌 밤을 가는 나그네헌테 달겉은 소리꾼이 되그라. 우리 조선백성들은 시방 캄캄헌 세상을 살고 있니라. 나라는 왜놈에게 빼앗겼고, 집안 살림언 서발 막대기 하나 걸거칠 것이 없을만큼 가난허니라. 그런 백성에게 위안을 주는 소리꾼이 되그라.”
“지가 그럴 수 있을런지요.”
“너는 목구성이 좋고, 무엇보다 소리럴 배우겄다는 당찬 오기같은 것이 있어 좋니라. 어쩌면 니가 내 마지막 제자가 될 듯허구나. 내가 성심으로 갈쳐야헐 내 마지막 제자가 되겄구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스승님언 오래오래 살으셔서 조선 판소리의 큰 산이 되셔야허십니다.”
“자꼬만 기력이 딸려. 가끔언 할아부님이 꿈에 뵈이시기도 허고, 또 가끔언 내게 비상 사발얼 내밀던 아부님이 자꾸만 손짓얼 허시기도 허고...”
순간 송만갑의 몸이 기우뚱 흔들렸다.
얼른 송만갑의 허리를 부축한 이화중선이 말했다.
“다리가 아프시면 쉬었다 갈끄라우?”
“아니다, 다 왔구나. 보그라. 여그가 연재 몬당이고 쩌그가 운봉이니라. 쩌그 저 모퉁이럴 돌아서서 담배 한 대참만 가면 운봉 비전리니라. 거그가 가왕이신 흥자 록자 증조 할아부님이 살으시던 곳이니라. 내가 배왔고, 니가 배운 동편제소리의 탯자리가 바로 저기니라.”
송만갑이 손으로 가리켰다.
구비가 끝난 곳에서 길이 시작되었고, 길이 끝난 곳에서 다시 구비가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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