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률사 쉰지가 두어 달은 되었지요? 송명창.”
송만갑의 얼굴에서 이 사람이 또 떠나고 싶어하는 구나, 짐작한 박부자나 오부자가 먼저 말문을 열어 주었다.
“고달픈 백성들이 좋아라허던 얼굴이 눈에 삼삼 밟혀서요.”
“참, 지성이요. 이것 가지면 두어달은 꾸려갈 수 있을 것이요.”
박부자나 오부자가 전대를 내놓으면 송만갑의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물론 공연을 순전히 공짜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입장료를 받기도 했고, 가끔은 지방 유지들의 도움으로 초청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그래도 박부자나 오부자의 성심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제가 듣기로는 스승님께서는 유성기판 취입헌 값만혀도 겁나게 벌었을 것이라고 허든디요. 조선팔도에서 스승님만큼 유성기판얼 많이 낸 소리꾼도 없잖은개비요.”
이화중선의 말에 송만갑이 대꾸했다.
“엄청 벌었제. 아매 내가 유성기판 값으로 받은 돈을 모았으면 서울의 기와집얼 스무채는 사고도 남았을 것이니라.”
“헌디, 왜 맨날 가난허시다요?”
“다 썼제. 협률사 공연 댕김서. 운봉의 박부자 어르신이나 구례의 오부자 어르신이 내가 눈치만 보여도 전대를 내놓으시지만, 나도 염치가 있제. 어뜨케 그 분들 재물만 축얼 내겄느냐? 내가 그랬니라. 일본에 한번 가서 유성기판얼 녹음허고 돌아와 그 값얼 받으면 그걸로 또 협률사럴 만들어 공연얼 댕기고, 판이 많이 팔렸담서 돈얼 가지고 오면 또 그걸로 협률사럴 맹글아 공연얼 댕기고 그랬니라. 돈없이 소리 배우겄다고 찾아 온 제자덜언 재우고 입히고 믹여감서 갈치기도 숱허게 했고.”
“스승님께 소리럴 배운 제자들이 일만명은 넘는담서요?”
“일만 명언 택도 없고, 기천명언 안 되겄느냐? 내가 세상에 없을 때럴 생각혀서 부지런히 길러야 안 허겄냐? 그놈덜이 다 나 대신에 설움많은 백성덜얼 위로해주어야헐 판인디.”
“그래서 그리 엄하십니까?”
“내가 엄해?”
“평상시에는 인자허신 할아부지신디, 제자덜 앞에서 북채만 잡으시면 호랭이로 안 변하십니까? 눈빛이 벌써 달라지신당깨요. 술 담배 묵는다고 쫓아낸 제자만해도 수십명이람서요?”
“나라를 왜놈에게 빼앗긴 나라의 가객으로 술담배럴 혀서는 안 되제. 술이나 담배가 소리꾼한테넌 비상과도 같은 것이다만, 내가 중요시 여기는 것언 그 마음자세니라. 술 묵고 담배 피우는 흥청망청헌 맴으로 어찌 진정으로 백성얼 사랑허는 소리럴 배울 수 있것느냐? 낭중에넌 몰라도 배울 때넌 마음 자세럴 정갈허게 가져야제.”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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