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놈덜, 아, 나라가 누구땜에 무너졌는디, 즈그덜이 못 묵는 밥이라고 재나 뿌리자는 심사겄제? 애초부터 벼슬아치덜이나 부자양반덜언 일반 서민대중들과 한 자리에 앉아 소리럴 감상허는 것에 질색얼 혔응깨.”
김창환의 말이 아니드래도 송만갑도 협률사 공연이 오래 가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아, 협률사 없으면 공연얼 못 헌다요? 맘에 맞는 사람끼리 뭉쳐서 공연얼 댕깁시다.”
“그러세나. 판얼 줄이면 조선 팔도 어딘들 못 가겄는가?”
김창환의 말에 송만갑은 평소 자신을 잘 따르던 소리꾼 몇 명하고 기생 몇 명을 끌어들여 송만갑 협률사를 만들었다. 스스로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단원들이며 백성들이 송만갑 협률사라고 불러 주었다.
“화중선아, 알겄느냐? 내가 구태여 부자들이나 고관대작들의 사랑방얼 찾지 않고 쪼그만헌 협률사럴 꾸며 조선팔도럴 돌아댕긴 까닭얼?”
“백성 사람의 마음이 아니겄습니까?”
“옳은 소리니라. 내가 재물에 욕심이 있었다면 고관대직이나 부자들의 사랑방을 찾아다녔을 것이니라. 명창 대접 받음서 돈도 벌고 호강도 허고, 헌디 그것언 소리꾼의 참 자세가 아닌 것 같드라. 아부님의 가슴에 한을 앵김서꺼정 소리에 기름칠 헌 내 고집에도 맞지 않고. 흐따, 그런디, 이놈의 깔크막언 왜 이리도 길다냐? 내가 남원에서 운봉얼 숱허게 왔다갔다 혔니라마는 오늘밤에넌 유난히 이 길이 먼 것 같구나.”
“스승님의 연세가 있응깨 글제요.”
“그런개비다. 인자넌 내가 너보다 더 숨얼 헐떡이고 있구나. 춘향가 한 마당얼 다 부르고 난 것 맨키로 숨이 가뿌구나.”
“그래도 스승님언 아직도 젊으시구만요. 제자덜얼 갈칠 때 보면 힘이 펄펄 허시등구만요.”
“허허허, 그랬느냐? 늙은 내가 힘이 펄펄 났다고?”
“하먼요. 아매도 조선팔도에서 스승님만큼 제자 욕심이 많은 소리꾼도 없을 것이구만요.”
이화중선의 말에 송만갑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원들을 이끌고 공연을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소리꾼에 짐꾼까지 스무 명이 넘는 단원들이 함께 움직이는 것도 그렇지만, 가난한 살림의 백성들이 공연판에 모여주지를 않는 것이었다. 남원 운봉의 박부자나 구례의 오부자같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근근히 공연단을 꾸려가고는 있었지만, 가끔은 밥 한 끼 값이 없어 비오는 날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스무남은 단원들이 하늘만 원망스레 쳐다본 일도 부지기수였다.
어찌어찌 공연단을 꾸려가다가 지치면 돌아와 향리의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엉덩이가 들썩이면 운봉의 박부자나 구례의 오부자를 찾아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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