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일이다요? 김명창님.”
“먼 일언 먼 일? 큰 일이제. 황제폐하의 등극 사십주년을 축하허는 공연을 갖기로 했다네. 전국에서 소리꾼이란 소리꾼언 다 올라오는디, 자네허고 내가 책임얼 지고 갈치라고 허시네.”
“그래라우? 소리판이 크게 벌어질랑갑소이.”
“조선이 생기고 소리가 생긴 후로 이만헌 판언 없었제.”
그러나 협률사는 처음 계획했던 공연을 가질 수가 없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이백명 가까운 소리꾼을 잡가는 잡가대로, 판소리는 판소리대로, 창극은 창극대로 제각기 능력에 맞게 배치하여 연습을 하고 서대문 쪽에 극장까지 지었는데, 궁에서는 왕자가 병이 들고, 백성들은 보리흉년이 들어 끼니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처지가 된 것이었다. 거기다가 엎친데 덮친다고 온역이라는 전염병까지 만연하여 나라의 형편이 춤추고 노래부를 처지가 아니었다.
결국 협률사 공연은 몇 번이나 연기되었다가 끝내는 취소되고 말았다.
“김명창님, 겁나게 힘이 팽겨뿐지요이.”
송만갑이 일 년이 넘게 들인 공력이 헛수고로 돌아가는 것이 안타까워 말했다.
“왜 아니겄는가? 극장언 번듯하게 지어졌는디, 그런 극장에서 멋들어지게 공연 한번 헐라고 했는디, 다 된 밥에 재뿌린다고 빌어묵을 콜레라 땜에 공연언 물건너가뿌렀네.”
김창환도 협률사 공연에 들인 공이 아까운지 맞장구를 쳤다.
“허면 팔도에서 모인 소리꾼얼 저대로 뿔뿔이 흩어지게 맹근단 말씸이요?”
“글씨 말이네. 소리꾼들도 소문언 들었는지 웅성웅성허고 있다네.”
김창환의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기던 송만갑이 말했다.
“김명창님, 기왕에 판얼 짜고 연습얼 혔는디, 그냥 말 수는 없잖십니껴. 황제폐하나 고관대작덜언 나라의 흉사를 두고 소리판이며 춤판을 벌일 수가 없다고 허드래도 극장도 번듯허게 지어졌겄다, 무슨 수를 쓰던 공연얼 혀보십시다.”
“무슨 수를 쓰건?”
“아, 제가 아는 궁내부 대신이 하나 있는디, 그분께 잘 말씸디리면, 가령 흉년에 쪼들리고 콜레라에 근심걱정 많은 백성들을 위로헌다는 명분얼 내세우면 어찌어찌 허락이 안 떨어지겄소?”
“송명창이 일얼 꾸며볼라면 보게나. 일이 성사되면 성심으로 돕겠네.”
그렇게 해서 번듯하게 지어진 원각사에서 일반 백성들을 위한 공연이 펼쳐졌다.
새로운 형식의 창극이며 조선팔도에서 내노라하는 명창들이 출연한다하여 극장은 공연 때마다 발디딜 틈이 없이 청중들로 가득찼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관이며 부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러일전쟁이다, 을사보호조약이다 해서 가뜩이나 시국이 어수선한데 협률사 공연이 퇴폐풍조를 조장한다고 비난을 하고 나선 것이었다. 어용신문에서 벼슬아치들의 불평불만을 그대로 받아 적어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결국 공연중단 명령이 떨어졌다.
<다음호에 계속>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np남원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