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넌 조선팔도에서 최고이신 스승님이신데, 어전이라고 꿀릴 것이 있었겄습니까? 폐하께서 좋아허시든가요?”
“허허허, 좋아허셨제. 소리 한 대목이 끝나자 황제폐하께서 내 손얼 덥썩 잡으심서 니가 최고니라, 니가 최고니라, 허심서 내게 감찰직을 제수해주시더구나. 황제폐하가 잡아주신 손얼 차마 못 씻고 보름남짓얼 수건얼 동여매고 다녔더니, 나 좋다고 따라댕기던 기생년 하나가 냄새가 난담서 잠든 사이에 씻어뿌렀더구나.”
“순검 노릇도 실지로 허셨담서요?”
“그랬니라. 협률사가 잘못되고 나서 석달간 순검옷을 입고 왔다갔다 혀봤니라. 천하에 못혀묵을 짓이 그 짓이더구나. 역시 사람언 타고난 팔자대로 살아야허는 개비드라. 나무꾼은 지게를 지고, 소리꾼언 소리럴 혀야 사는 맛이 나는 것이제. 딱 석달간 순검노릇얼 허다가 옷 벗고 나왔니라.”
“협률사 얘기 좀 혀주세요, 스승님. 거창혔담서요?”
“암, 거창혔제. 내가 소리꾼 몇 명을 데리고 조선팔도럴 돌아댕김서 협률사 흉내는 내고 있다만, 시방 조선팔도에 그만그만헌 협률사가 사방으로 짐을 메고 돌아다니고 있다만, 협률사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니라.”
협률사는 고종황제의 등극 4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공연을 위해 조직한 임시기관이었다. 그 공연을 위해 따로 극장을 짓고 전국에 있는 소리꾼들을 불러 들였다. 황제 앞에서 소리 한 대목으로 국창이 된 송만갑은 조선 팔도를 떠돌며 소리공부도 하고 소리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소리 한 대목을 풀어놓고 다니다가 막 구례로 돌아와 지친 목을 쉬고 있던 중이었다.
하루는 구례 현감이 찾아와 황제께서 부르시니 어서 서울로 올라가 보라고 재촉했다.
“황제폐하께서 저를 부르신다고라? 먼 일이다요?”
“먼 일인가넌 잘 모르겄고, 암튼지 올려보내라고 혔응깨, 얼렁 올라가 보소.”
“황제폐하께서 부르신다먼 묵던 밥숟가락이라도 놓고 올라가야지라.”
송만갑이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오니 명창 김창환이 먼저 와 있었다. 그는 전라도 나주에서 났는데, 송만갑보다는 열 두 살이 많았으며, 몇 년 전에 남원 광한루에서 제비노정기를 들은 일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 송우룡의 소개로 송만갑이 적벽가 중 군사설움 대목을 불렀는데, 김창환이 ‘가왕 송문에 누를 끼칠 소리는 아니구나. 더욱 절차탁마하도록 하거라’ 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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