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한창 이름을 날리던 박기홍과 함께 공연을 한 일이 있었다.
송만갑이 소리 한 대목을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오자 청중들의 우레같은 박수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박기홍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말했다.
“자네, 그것도 소리라고 허고 자빠졌능가? 가왕께서 들으셨으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몽둥이 들고 쫓아오시겄구만.”
“아니, 성님. 그것이 먼 말씸이시대요?”
“장타령도 자네소리보다 낫겄구만. 절간 스님의 염불소리도 그보다는 낫겄구만.”
“흐긴, 성님 말씀이 옳소. 동냥치가 장타령얼 부르면 얼매나 듣기에 좋습디까? 명색이 서른 넘게 소리 공부럴 헌 저도 어깨춤이 덩실덩실 나옵디다.”
“그래서 장타령으로 돌아설라는가?”
“동냥치가 각설이 타령을 부른 만큼만 부를 수 있다면 소리꾼으로 실패헌 인생언 아니겄제요. 무릇 소리란 무엇입니까? 시름 많은 백성들의 시름을 덜어주자고 허는 짓이 아닙니까? 무거운 법통을 고집허다 보면 백성들언 못 알아듣는단 말입니다.”
“허허허, 가왕의 문하에서 어찌 자네같은 패려자손이 나왔을꼬?”
“청중덜이 좋아헌다면 저는 송문의 법제에서 쪼깨 벗어나는 것언 스스로 허용얼 헐랑구만요.”
박기홍은 혀를 끌끌 찼으나 송만갑은 자신의 소리 한 대목에 울고 웃는 청중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소리의 법제를 알고 법제대로 불러주기를 원하는 잘 난 사람 앞에서는 법제대로 불러주고, 화려하고 맛깔나는 소리를 원하는 청중들 앞에서는 군데군데 양념도 쳐서 불러 주었다. 그런 소문이 구례의 송우룡에게 안 들어갈 리가 없었다. 목이 꺾여 소리꾼의 생을 마감하다시피 하고 아들 송만갑에게 목을 매고 있는 송우룡에게는 분통이 터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들 만갑이가 집채덩이만한 바위덩이가 지리산 천왕봉에서 굴러떨어지는 웅장하고 묵직한 소리로 황제폐하 앞에서 소리를 하여 국창이 되기를 바랬던 송우룡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기생들이나 부르는 화려한 소리로 못난 백성들의 귀나 즐겁게 하자고 송문의 법통을 버린 아들놈은 죽어 마땅했다.
“죽자, 이놈아. 내 목 꺾인 것도 원통헌 일인디, 니눔이 패려자손이 되는 꼴언 두 눈 뜨고는 못 보겄다. 우리 함께 죽자.”
비상든 막걸리 사발을 아들의 입에 들이 부우려고 덤비며 송우룡이 울부짖었다.
“화중선아, 그때 말이니라. 내 맘얼 몰라주시는 아부님이 원망시러워 비상 사발얼 받아 묵고 나도 칵 죽어뿔고 싶었니라.”
송만갑이 말끝에 한숨을 매달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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