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비는 오를수록 가파랐다. 해질 무렵에 요천강가에서 송만갑이 가리키며 ‘쩌그, 저 고개를 넘어야허는디, 넘을 수 있겄느냐?’ 했을 때는 지리산 노고단도 한나절에 다녔는디, 했었는데, 막상 오르다보니까 쉽게 넘을 고개는 아니었다.
“몇 굽이나 돈 것 같으냐? 화중선아.”
“글씨요. 스무구비는 안 넘었으까요?”
“허면 일흔 아홉 구비가 남았구나.”
“겁나게도 남았네요.”
“숨이 가쁘냐? 다리가 아프냐?”
송만갑이 속으로 웃으며 이화중선을 돌아보았다.
“숨도 가쁘고 다리도 아프지만 어쩌겄능가요? 여그서 돌아갈 수도 없잖허요.”
“그렇구나.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는 길이구나. 소리의 길도 마찬가지니라, 첨에는 멋도 모르고 덤볐다가 숨이 가빠 돌아설라고 허다보면 걸어 온 길이 아까워서 못 돌아서고 쪼금만 더 쪼금만 더 허다본깨, 여그꺼정 왔었구나. 아장아장 걸음마 때 광자 록자를 쓰시는 조부님께 진국명산이라는 단가를 배우기 시작하여 오십 년이 넘게 입에 소리를 달고 살았구나. 그동안 나도 참 많이 소리의 길에서 돌아서고 싶었구나. 화중선아, 너 내가 독살을 당헐뻔했다는 소문언 들어 보았느냐?”
“구례 오경선 어르신의 소리방에서 동무들한테 귀동냥을 혔구만요.”
“그랬느냐? 흐긴, 조선 팔도의 소리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 소문을 못 들었을 리가 없제. 따지고 보면 나는 가왕이신 흥자 록자 할아버님의 그늘에서 한 날 한 시도 벗어난 적이 없구나. 가풍이라는 것이, 소리의 법제라는 것이 나를 꽁꽁 옭아매고 있었구나. 그것은 내 소리가 청중덜헌테 박수럴 받을수록, 내가 일본에서 녹음한 유성기판이 팔리면 팔릴수록 나를 꼼짝 달싹을 못허게 맹글았구나.”
송만갑의 목소리에 물기가 스몃으나 아직 소리의 초보꾼인 이화중선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얘기 좀 해주세요.”
“무슨 얘기 말이더냐?”
“독살 당헐 뻔헌 얘기 말씸이요.”
“허허허, 아직 올라가야헐 구비도 많이 남았고, 네가 듣고 싶다고 허니, 그 얘기나 해보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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