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놈이 흠칫 놀래는가 싶더니, 화등잔의 불을 끄고 나무사이로 슬금시 몸얼 숨기드구나. 그러더니, 한 구비럴 돌아서면 거그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 소리에 놀라 후다닥 숨고, 한 구비를 돌아서면 또 거그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 소리에 놀라 후다닥 숨고, 가만히 본깨 호랭이란 놈이 내 소리럴 알아듣드란 말이다. 흐흐참, 호랭이란 놈이 소리를 알면 얼매나 안다고...”
노인이 말끝에 콜록콜록 기침을 매달았다.
“괜찮으세요? 스승님.”
여자가 노인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소리꾼헌테 해소병은 참 지랄겉은 병인디, 나이넌 어쩔 수가 없는 모냥이구나. 천하의 송만갭이가 해소기침으로 숨이 가빠허다니.”
노인은 그때 한창 소리 하나로 천하를 떠들썩하게 만든 송만갑이었다.
그는 지금 참으로 오랜만에 아버지 송우룡의 탯자리인 운봉 비전리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 가면 가왕이라 불리던 할아버지도 무덤에설 망정 큰 기침 하나로 지리산 자락을 크렁크렁 울리고 있을 판이었다.
여자는 남원 수지 홈실 마을로 협률사 공연을 갔다가 만난 나이 스물도 안 된 새댁이었다. 공연이 있었던 내리 사흘을 무대의 제일 앞자리에 앉아 넋을 놓고 있더니, 일행이 짐을 챙겨 앞밤재를 넘어 구례 쪽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나도 소리꾼이 될라요, 나 쪼깨만 델꼬 가주씨요’하고 따라 붙더니, 구례 부자 오경선의 소리방에서는 일행의 시중을 들며 곰살맞게 굴었고, 화개 하동 공연에서는 일행의 밥수발을 들며 한 몫을 거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러다 지치면 돌아가겠거니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일행이 흥얼거리는 민요자락이나 춘향가 중의 사랑가 한 대목을 그럴듯하게 불러 ‘너 어디서 누구헌테 소 리럴 배운 적이 있느냐?’ 물으니, 어려서부터 통을 매러 다니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아버지가 흥얼거리는 소리를 귀동냥으로 들었고, 아버지가 남겨준 사설 공책을 닳도록 외우고 또 외웠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통을 매러 간 아버지를 따라 지리산 달궁골에 들어갔다가 아버지가 ‘화중선아, 널랑은 여그서 소리공부나 하고 있그라’하며 떼놓고 가는 바람에 삼년을 달궁골에서 냅다 고함만 지르면 산 일도 있다고 했다. 그런 화중선이었으니, 미친 소리바람에 따라 나선 길을 쉽게 포기할 리가 없었다.
“허허허, 네 소리의 내력이 있었구나. 아무래도 니 아부지가 또랑명창 쯤언 되었었는개비다. ” 송만갑이 허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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