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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월예찬(2)- 인월장날 풍경남원시 인월면장 양선모

 

 

 

 

 

솥에서는 모락모락 순대 삶는 김이 오르고 전대를 두른 생선 장사들은 “오늘 아침에 부산에서 온 거, 겁나게 싱싱해요” 를 외친다. 볕이 드는 자리에 산나물을 한광주리씩 가지고 나온 할머니들은 냉큼 천원에 가져가라 재촉하고 트럭에 장화를 신고 앉은 꼬막장사는 꼬막이 왔다고 목청을 높인다. 펑 하고 소리와 함께 튀밥 튀기는 연기가 퍼지고 고무줄 장사와 소금장사 그리고 번데기 솥을 걸친 리어카와 강아지를 팔려고 소쿠리에 담아 온 할머니까지 뒤섞인 시장은 북새통을 이룬다.

투가리처럼 우악스러운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섞여 오가는 인월 장의 풍경이다. 매월 3일과 8일에 서는 인월장은 조선말엽 갑신정변까지 유지되었던 역참(인월역)터에 붙어있는 전통시장에서 열리는데 그야말로 전라도와 경상도가 모이는 삼도장터가 된다.

예로부터 인월은 함양과 운봉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남해에서 올라온 소금과 해산물 그리고 지리산에서 나온 산나물과 콩 등이 거래되는 장소였다. 인월과 하동을 거점으로 산물을 나르던 염두고도 (鹽豆古道)라는 옛길이 있어 인월에서 출발한 콩 지게꾼들과 하동에서 출발한 소금 지게꾼들이 벽소령에서 지게를 바꿔지고 내려가 인월 장과 화개 장에 풀었다고 한다.

이러한 공간적 기능은 훗날 물물교환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혼인으로 이어졌는데 장날이 자식을 시집, 장가보내는 중매의 장으로 발전했음을 말해준다. 시집 온 여인들이 이름대신 지니었던 택호(宅號)를 보면 인월에 함양 댁이나 하동댁이 많은 것이나 함양, 하동에 인월 댁이 많았던 것이 바로 이러한 인맥교류의 역사를 뒷받침하고 있다.

백제에 속하였던 남원 땅과는 달리 인월이 속한 운봉현은 신라의 영지였기에 어쩜 인월장은 신라인으로 살았던 할머니가 물려준 사투리로 그들만의 통속한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장날이 되면 장이 서는 것이다. 인월 사람들에게 장날은 하나의 관습이며 신라 족(族)끼리 대물림한 촌스러움을 거리낌 없이 나누고 보여주는 마당이다.

이제 나이가 들어버린 한때의 소년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장에서 돌아가며 보았던 인월고원의 달빛과 어머니의 땀 냄새를 잊지 못할 것이다. 인월장에는 그렇게 사람들의 시간이 배어있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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