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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편제의 시조 가왕 송흥록 <24>

하루에도 몇 차례씩 송흥록이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던 어느 날이었다.

김병기가 가마를 보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인가하고 갔더니, 김문 누군가가 기생첩을 들이는 날이라고 했다. 갓쟁이들 스무남은 명이 사이사이에 기생들을 끼고 앉아 산해진미로 차려진 음식상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벌써 술이 몇 순배나 돌았는지, 얼굴이 불그죽죽 달아올라 있었는데, 송흥록이 들이당착에 김병기가 오늘같이 즐거운 날 우리 송 가왕의 소리가 없대서야 말이 아니지, 어디, 오늘은 무슨 대목으로 나를 즐겁게 해줄 것인고? 하며 눈을 게슴츠레 뜨고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즐거운 날이라 하니, 제가 잘 안 부르는 대목이기는 헙니다만, 춘향가 중의 사랑가를 불러 올립지요.”

“사랑가, 좋지.”

김병기가 손바닥으로 무릎을 탁탁 쳤다. 어쩐지 사랑가를 부를 기분도 아니고, 사이사이에 끼어 나앉은 기생들의 엉덩이를 대낮부터 주물럭거리고 있는 갓쟁이들의 꼬락서니에 귀곡성으로 찬물이라도 끼얹을까 하다가,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랬다는 말을 떠올리고는 억지로 사랑가를 마쳤을 때였다.

대문 쪽이 시끌벅적하더니, 한 사내가 아, 즐거운 잔치에 흥선이 빠져서는 안 되지요, 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며 달려 들어왔고, 하인놈들이 우르르 쫓아왔다.

“아, 좌찬성 대감, 이런 먹잘 것 있는 잔치에 흥선을 부르지 않는대서야 말이 아니지요. 며칠을 굶었더니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었는데, 소인에게도 말석이나마 내주시겠습니까? 저 하인놈들이 어찌나 괄세를 하는지, 겨우 여기까지 왔습니다.”

흥선이 납작 엎드리며 흐 하고 웃었다. 그때였다. 김병기가 하인들을 향해 고함을 버럭 질렀다.

“뭣들 하느냐? 저 동냥치 놈을 밖으로 내치지 않고.”

김병기의 호령이 떨어지자마자 하인놈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흥선군을 개 끌듯이 질질 끌고 나갔다. 아, 좌찬성 대감, 쫓아내드래도 곯은 배는 채워서 쫓아내야 할 것이 아니요? 하는 흥선군의 애원이 송흥록의 머리를 순간 홰까닥 돌게 만들었다.

느닷없이 걸걸한 수리성 한 대목이 목구멍을 빠져나왔다.

“대감, 권불십년이라고 했구만요. 저 양반이 그래도 종친이라는디, 저리 박대를 해서야 되겠습니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혔구만요. 사람도 벼슬이 높아질수록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허는 것이라고, 무식헌 쇠견에도 그런 생각이 드는구만요.”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눈을 껌벅거리며 듣고 있던 김병기가 그것이 자신을 나무라는 소린 줄 알자 뭐시여? 이놈아, 네가 죽을 자리를 못 찾아 환장을 한 모양이로구나, 하고 호통을 쳤다.

“허면, 저는 이만 가 볼랑구만요.”

송흥록이 벌떡 몸을 일으켜 김병기의 집을 나와 버렸다. 저, 저 쳐 죽일 놈이, 하는 소리가 뒤를 따라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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