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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라이프 연재소설 2 국창(國唱) 송만갑
동편제의 시조 가왕 송흥록 <23>

“그러하옵니다, 전하. 소인도 오늘에사 처음으로 송 명창의 소리를 들었사온데, 가왕이라는 칭호가 허명이 아니었음을 알겠나이다.”

“조선에 천하의 보배가 있음을 내가 새삼 알겠구나.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다니, 송흥록의 거처를 좌찬성이 알아서 마련해 주도록 하시오.”

“예, 전하.”

이날 송흥록은 상감으로부터 정삼품 통정대부의 교지를 받아가지고 대궐을 나왔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막 김병기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허름한 차림의 남자 하나가 김병기가 가마에서 내리자마자 쪼르르 달려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하이고, 좌찬성 대감, 소인 흥선군이 끼닛거리가 없어 난병풍을 하나 억지로 맡기고 갑니다, 종이값이나 넉넉하게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애걸을 하는 것이었다. 다른 말은 귓등을 스치고 빠져 나가는데 흥선군이라는 말이 귀청을 두드렸다.

아, 저 양반이 종친이면서도 김문으로부터 온갖 수모를 다 받는다는 흥선군 이하응 대감이구나, 한눈에 보기에도 잔치집 개노릇이나 헐 양반은 아닌디, 무슨 까닭으로 그런 수모를 당허고 댕기까이,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소리꾼들 사이에서도 흥선군이라하면 얘깃거리가 많았다. 명색이 왕족이면서 순 상놈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건달패처럼 한양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김병기가 고개도 안 돌리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흥선군이 부스스 몸을 일으켜 손을 탈탈 털더니, 하늘을 향해 히죽 웃고는 골목을 빠져 나갔다. 그 잠깐 사이에 송흥록은 흥선군의 눈이 번쩍 빛나는 것을 보았다.

상감의 부탁 때문인지 아니면 미리 그렇게 하기로 작정을 하고 있었는지, 한양에 올라온 열흘도 안 되어 김병기가 그럴 듯한 기와집을 한 채 마련하여 주었다. 그리고는 날마다 송흥록을 불러 소리를 시키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종친들의 모임이라고 했고, 어떤 날은 김문의 모임이라고 했으며 또 어떤 날은 영의정 아무개의 생신 잔치라고 했으며, 심지어는 김문 어느 집 안방마님의 생일에까지 송흥록을 불러들여 소리를 시켰다.

그렇게 일 년 남짓 살고나자 송흥록은 광에 쌀이며 돈은 차곡차곡 쌓여 가는데도 어쩐지 자신의 처지가 잔칫집 개처럼 처량하게 느껴지면서 소리에 신명이 나지 않았다.

호의호식에 내 소리가 망가지고 있구나. 기생방에서나 불러야 할 소리럴 내가 시방 허고 자빠졌구나. 안 되겄구나, 내가 한양얼 떠나야겄구나.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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