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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편제의 시조 가왕 송흥록 <22>

다음날 송흥록은 김병기와 나란히 가마를 타고 대궐로 들어섰다. 상감 앞에서 김병기가 말했다.

“상감마마, 제가 언젠가 말씀드린 일이 있던 송흥록이라는 소리꾼입니다. 충청도 속리산 골짜기에서 눈밭에 미끄러져 꼼짝없이 죽을 저를 살려주었던 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지요.”

“허허, 네가 송흥록이냐? 네가 가왕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면서? 이 나라에 왕은 나 하나인 줄 알았더니, 대궐 밖에도 또 왕이 있었다는 소리가 아니더냐?”

“망극하옵니다. 모흥갑 명창이 씰데없이 장난삼아 붙여준 이름이지요. 어찌 제가 가왕일 수 있겠습니까?”

송흥록의 가슴이 바짝 오그라붙었다.

“어디, 소리를 한 대목 해 보거라. 네 소리가 나를 흡족하게 하면 상을 내릴 것이로되, 만약 그렇지 못하면 감히 왕을 칭한 중벌을 면치 못할 것이니라.”

상감의 분부가 지엄했다. 송흥록의 온몸에서 땀이 부쩍 솟았다. 김병기가 데리고 온 고수가 북채를 들고 돌아보았으나 어느 대목을 부를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지만 덜덜 떨릴 뿐이었다. 소리 한 번 잘못 삐끗했다가는 영락없이 죽을 목숨이 아닌가. 지금까지 수백 번을 사람들 앞에 서서 소리를 했지만 목숨을 걸고 소리판에 선 일은 없었다. 송흥록이 눈을 질끈 감고 잠깐 마음을 다스렸다. 진양조를 얻던 날의 일이 문득 뇌리를 스쳐갔다. 상감도 사람인데, 정말 좋은 소리라면 상감의 귀를 감동시키지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목구멍에서 쏟은 몇 사발의 피가 내 목숨을 구해주리라.

그런 작정이 선 송흥록이 입을 열었다.

“허면 제가 못 부르는 소릴망정 적벽가 중에서 수만 군사를 잃은 조조가 혼자 도망가는 대목으로 전하의 귀를 더럽혀 볼까 하나이다.”

“오냐, 어서 불러 보거라.”

상감이 고개를 끄덕이자 고수가 쿵다닥 북을 두드렸다. 송흥록이 입을 열어 이때에 조조는 장대에 높이 올라, 하고 아니리부터 엮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입을 열어 소리를 내뿜기 시작하자 상감도 김병기도 눈앞에 없었다. 오직 백운산의 험준한 산봉우리들과 지리산 계곡의 크고 작은 폭포들이며 높디 높은 천왕봉이 머릿속을 가득히 채우는 것이었다.

송흥록이 늦은 중모리로 군사를 다 잃은 조조가 한참 도망을 가다가 잠깐 멈추어 산천을 구경하는데, 온갖 새들이 갖가지 소리로 우는 대목까지 부르고 허리를 깊숙이 숙이자 상감이 과연 가왕의 칭호를 들을 만하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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