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심폭포에서 나온 송흥록이 한 달 남짓을 두문불출 사랑방에서만 뒹굴고 있자 어머니가 슬슬 눈치를 살폈다. 백운암에서 나온 이후 소리나들이를 나갔다가 돌아와서도 길어야 사흘, 잘하면 열흘 남짓 머물렀다가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집을 떠나던 아들이 꼼짝을 앉자 무슨 일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는 모양이었다.
“어째 요짐언 소리혀 돌라넌 관장도 없다이. 아매 니가 비전에 와 있는 줄얼 모르는 개비다. 글안허면 펄쌔부터 사립문이 다 닳았을 것인다. 가마가 줄얼 섰을 것인디.”
그렇잖아도 슬슬 움직여 보려던 송흥록이 불쑥 말했다.
“이참에 광록이나 만내 보러 가끄라우? 엄니.”
어머니의 얼굴이 대번에 활짝 펴졌다.
“참말로? 참말로 니가 그 먼 제주도꺼정 광록이럴 만내러 간다는 말이냐?”
“동생 덕분에 저도 제주도 귀경 한 번 허지라우, 뭐.”
그날로 송흥록은 행장을 챙겼다. 동구 밖까지 따라나온 아버지 송 첨지가 뱀사골에 있는 만순이 놈언 걱정얼 말그라, 나도 사실언 그놈이 참소리꾼이 될랑가 어쩔랑가 몰라서 개꼬막 보듯이 보았다만, 지낸번에 본깨 작심만 허면 괜찮헌 소리꾼이 되겄드라. 목구성도 그만허면 넘축에 빠진 것 같지넌 않고, 내가 가끔 가서 북장단언 맞춰 주마, 하고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아부님꺼정 나서실 것이 있겄십니껴? 하고 말았지만, 자식이 데려다 놓은 사람한테 무심할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송흥록은 마음이 놓였다.
약속된 나들이가 아니었기에 송흥록의 제주행은 그야말로 세월아, 네월아 가거라였다. 가다가 소리판을 만나면 소리 한 대목을 하고, 가다가 고뿔이라도 들면 그 핑계로 또 며칠간을 머무르다 가고 하다보니까, 목포까지 가는데 만도 석 달이 걸렸다.
그러나 목포에서도 제주도 가는 배가 날마다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장사배가 떠나기도 했고, 한양에서 죄를 짓고 귀양을 가는 벼슬아치를 태우고 가는 배가 있었고, 공물을 싣고 왔다가 돌아가는 관선도 있었으나, 송흥록이 제주도로 가는 장사배를 얻어 탄 것은 목포에서 또 두어 달을 머문 뒤였다.
꼬박 사흘을 걸려 제주도에 도착했으나 동생 광록을 찾는 것은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 육지도 아닌 섬이라고 하여 제주도에 도착만 하면 배에서 내리자마자 섬 안의 어느 산자락에서 부르는 동생의 소리가락이 들려 올 걸로 믿었는데,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한라산을 올려다보자 앞이 막막했다.
흐따, 저 짚은 산중 어디서 광록이 놈얼 찾으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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