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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보내는 편지강영석/ 산동 대상마을

 

 

 

 

 

 

겨릅대와 칡껍질

 

기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준다.

슬펐던 일도, 기뻤던 일도 시간이 흐르면 돌아갈 수 없지만,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살아 숨 쉬며 우리를 그 시절 그 장소로 데려다 준다.

우리 동네는 남원시내에서 20km 정도 떨어진 산동면에서도 산골짜기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천황봉 자락 아래 위치한,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대상이라는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60년대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외양간에 소를 길렀고, 봄이면 좁은 방에다 누에를 쳤다. 외양간에서 기른 소는 집안의 큰 재산이었고, 누에를 쳐서 나온 고치도 남원 제사(製絲) 공장에 내다팔아 돈을 만들었다. 그렇게 돈을 벌어 돌아오는 길에는 떫은 감을 따서 아랫목에 우려 뒀다가 장날 시장에 내다 팔아 가욋돈을 벌던 시절이 있었다.

뜨거운 여름철이면 산에 널려있는 칡넝쿨을 걷어 팔았고, 그 칡을 삶아 칡껍질을 벗겨(葛布) 돈을 벌었으며, 삼(麻)을 재배하여 베어낸 삼을 마을 앞 냇가에서 삶아내면 온 동네사람들이 겨릅대(저릅대, 껍질을 벗긴 삼대)와 삼 껍질을 분리해 소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때는 그래야 되는 줄 알았고, 그래야 먹고 살 수 있었다.

 

 

마을에 학교가 없어 산동 소재지까지 신작로로 걸어가면 1시간, ‘한없이 크다’는 “한재” 고개를 넘어가면 40분 거리를 걸어야 산동초등학교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이런 아이들이 안쓰러웠는지 60년도 말 아이들이 조금은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마을에서 땅을 희사하고 마을사람들 부역(負役)을 통해 산동초등학교 대상분교를 만들었다.

거기다가 학생들이 체험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마을 앞산도 기꺼이 내어주었다.

멀리만 있던 학교가 가까운 마을에 생겨나자 신이 난 학생들은 마을에 모여 애향기를 앞장세우며 고무신에 책보 둘러메고 “잘살아보세”나 “조국찬가”등의 노래를 부르며 환한 얼굴로 학교에 다녔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42명이 입학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반에서 공부하고 졸업을 맞았다. 함께 졸업한 친구들 중 그나마 형편이 좋은 아이들 10명 정도가 중학교에 진학했고 최종적으로 42명의 졸업생 중 5~6명이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니, 고등학교 진학률이 15%에도 미치지 못하던 시대였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조금이라도 공부하려 중·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하숙이나 통학은 어림도 없었고, 거의 모든 학생이 자취를 했다.

자취방에서 밥을 지어먹기 위해서는 석유곤로나 연탄을 이용했다. 하지만 가난한 살림에 석유나 연탄을 사는 것도 아까워하는 부모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취방 연료를 아끼기 위해 새벽 3시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칠흑 같은 밤이면 장작을 잘게 도끼로 패서 지게에 한 짐 지고서는 시내까지 5~6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걸어서 이동해 자취방에 날라주는 아버지도 있었다.

우리 형제들이 모이면 종종 나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앞서 언급한 부모님보다는 조금 편하게 문명의 이기인 리어커를 이용했다. 아버지는 앞에서 끌고 자식들이 뒤에서 밀며 내가 사는 자취방까지 장작을 날랐던 것이다.

방안에서 버튼만 누르면 냉·난방이 해결되는 시대에 사는 요새 학생들은 이런 이야기를 믿을 수 있을까?

부모님의 그런 희생덕분이었는지, 학창시절 나는 크게 일탈하지 않고 학교를 잘 마칠 수 있었고, 그 덕에 밥도 굶지 않고 크게 성공하지도 못했지만, 남들만큼 평범하게 살아왔다.

물론 초등학교 졸업하고 일찌감치 서울로 일자리 찾아 올라간 친구들 중에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여유 있는 삶을 사는 친구도 있지만, 딱히 그 친구들이 부럽지는 않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봄이면 소쩍새 울고 여름나절 개구리 소리에 동네 개울가에서 물장구 치고 수박서리하며 놀던 그 시절이 그립고 겨울철에는 얼어있는 논에서 대발을 만들어 썰매를 타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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