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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충신 정몽주를 배향한 용암서원

 

정몽주는 고려 말인 1380년 이성계가 운봉 황산에서 왜군을 토벌할 때 조전원수로 내려와 황산전투를 왜구를 토벌하고 승리로 이끌어내는데 함께한 고려의 충신이다. 그가 벼슬에 있을 때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에 앞장섰고 기울어져 가는 고려의 국운을 바로잡고자 노력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남원시 운봉읍 가산리 가산마을에 용암샘이 있다. 이 용암샘은 1634년 또는 1695년에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용암서원에서 사용했던 샘이다. 덧붙이자면 사람들은 용암샘 주변이 서원 터였다는 것을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을 뿐 누가 배향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을 찾기란 힘들다. 결국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용암샘을 제외하고 주변은 농경지와 도로가 개설되어 옛 흔적을 찾기 어렵고 마을이야기도 입으로 전해지던 때와 지금은 너무도 변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이 용암샘을 통해 위치 추정이 가능하다.

용암서원 이야기를 꺼낸 든 것은 배향한 인물 중 주벽으로 모신 사람이 바로 포은 정몽주와 조선 중기 문신과 의병으로 활동한 현인들을 모신 서원으로 복설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운봉현감을 지내며 황산대첩비를 건립하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일으켰던 회재 박광옥, 운봉현감으로 재직하며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에 전공을 세운 지소 황일호, 임진왜란에 2,000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싸우고 교룡산성을 보수했던 도탄 변사정, 노진의 아들로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킨 운재 노형필, 임진·정유난에 의병을 일으키고 전란으로 풍기가 문란해진 고을의 질서를 잡고 사재를 털어 향토부흥에 헌신한 명암 서식 등 6현을 배향한 유적이다.

그러나 용암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전국 650개 서원 중 소수서원과 도산서원 등 47개 서원만 남기고 모두 훼철되었으며 이후 많은 서원들이 복설되었으나 용암서원은 현재까지 복설됮지 못한 채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정몽주를 죽인 이방원은 정몽주가 죽은 13년 뒤인 1405년에 그를 영의정에 추증하고 익양부원군에 추봉했으며, 문충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남원의 서원들 중 사액서원인 노봉서원을 비롯하여 아직 까지 복설하지 못한 서원들이 많다. 그중 용암서원은 배향 인물로 따지면 그 어느 서원 못지않은 인물이 충절과 덕행으로 이름을 떨친 성현들이다.

특히 황산싸움과 함께 운봉의 역사를 연결하는 미래 문화자원으로 가치가 높은 서원으로 복설의 꿈을 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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