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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보내는 편지>

 

 

 

 

 

 

전태영(53·금지)/ 재성남남원시민회 사무국장

 

내 어릴 적 동심의 세계 택촌

 

내가 어릴 적 동심의 세계를 보냈던 내 고향 남원에 있는 택촌마을은 소나기 영화에 나오는 소설속에 그려지는 배경과도 같은 곳이었다.

뒤에는 제법 높은 고리봉이 있고 봉우리를 올라가다 보면 중턱에 천지연 폭포도 부럽지 않은

연수암폭포가 있어 목욕뿐만 아니라 주위가 바위로 되어있어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흠뻑 받으며 낮잠도 자곤하여 어린 시절 감성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천혜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마을 어귀 앞쪽에서 눈에 들어오는 지근에 기찻길이 있고 금지역이 있어 논밭에서 일을 하다 몸이 고단 할 때 허리를 곧추세우며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친근한 사람들이라도 되는 냥 함박웃음을 머금고 미친 듯 ‘빠이빠이~~!’ 라며 큰소리로 소리지르고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팔을 연신 흔들어대며 피곤함을 잊곤 했다.

그 철도 건널목을 넘어 몇 걸음 내달리면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초등학교가 있고, 초등학교를 뒤로하고 200여미터 지나면 하늘높이 치솟아 있던 포풀러나무가 간혹 오고가는 시내버스의 흔적들을 뒤집어 쓴 듯 비포장도로의 뿌연 먼지들로 옷을 입었다.

나는 어쩌다 덜컹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남원시내를 오가곤 했던 기억들이 희미하게나마 머릿속 깊이 박혀있어 웃음 짓곤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남원시내로 다녔는데 그때는 버스 보다는 기차를 타고 다니며 항상 만원이라 녹초가 되곤 했던 다른 친구들에게 문화생활을 자랑하며 기차 예찬론자가 되기도 했다.

신작로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양송이 공장은 어릴적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크기의 어마어마한 건물이라 큰 바위의 얼굴을 보며 신성시 하듯 경외감을 느꼈고, 그 공장 굴뚝을 올려다보면 우리나라의 삼대 산인 지리산의 노고단이 걸쳐져 클로즈업 되어져 "나도 저 높은 지리산 봉우리처럼 높은 사람이 될 거야!" 라며 미래에 대한 성공을 다짐하며 꿈을 키웠다.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지리산의 커다란 몸집 앞에 양송 공장과의 구분이라도 하듯 요천이 유유히 흘러 이곳에서 은어를 잡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홀딱 젖어 입술이 새파랗고 덜덜 떨며 집으로 쏜살같이 뛰어오곤 했다.

하루 일상이지만 운동장에 놀다 지겨우면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마을에 붙어있는 방죽으로 모여 뚝방에 불을 놓고 춤을 추듯 뛰어다녔다.

젖은 양말을 말린다며 널어놨다가 태워먹어 어머니에게 몽둥이찜질 당하기 일쑤였는데 그땐 양말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 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였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철부지 어린시절에는 서리를 빼놓을 수 없을 거다. 낮에는 인근에 수박서리, 저녁이 되면 친구네 닭장을 어슬렁거리기도 하며 많은 추억들이 벽돌 올리듯 쌓이고 쌓여갔다.

동네 마을회관에서 들판을 보고 있으면 노루가 두세 마리 떼 지어 다니며 펄쩍펄쩍 뛰어다녔고, 추운겨울에 뒷산에 올라가 보면 토끼도 손에 잡힐 듯 돌아다니는 등 어린 시절에 내 고향은 이런 천하의 배경을 가지고 있어 추억 거리가 많았다. 밤에도 잠을 자다보면 덜컹덜컹 기차 가는 소리와 함께 종이로 만들어졌던 방문에 기차의 불빛이 칸수만큼 지나가서 잠시 잠이 깨어 기차칸수를 세어보기도 했다.

그때 어린시절에는 그런 환경이 그렇게 좋은 줄 몰랐다.

요즘은 콘크리트 속에 살고 있다 보니 어린 시절에 호롱불 켜며 작업 화롯불에 손 녹이고 추위를 이겨내고 했던 시절이 얼마나 운치 있고 정겨운지 모른다.

겨울방학이 되면 뒷동산에 올라가 뛰어다니며 노루를 잡겠다고 활과 납총을 만들어서 친구들과 함께 다니기도 하고, 토끼를 잡겠다고 하얀 눈이 내린 산 속을 헤매며 놀았다. 대보름이면 들판에서 옆 동네 사람들과 불깡통 놀이를 하며 날을 새우기도 하고, 낮이면 어김없이 학교 운동장에서 편을 갈라 아이들과 축구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내 고향은 어린 시절 나에게 많은 감성을 만들어 줬다.

뒷산 고리봉, 연암폭포, 기찻길, 신작로, 지리산천왕봉, 방죽, 들판... 이런 환경적 배경이 나의 감성과 심성을 아마도 긍정적으로 이끌어준 요인이지 않았을까 싶다.

때로는 동네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동네 마을회관에서 기마전을 하며 친구들과의 우정을 쌓아 가고 멀리 보이는 지리산을 보며 저 큰 산과 같이 우뚝 선 사람이 되리라 다짐하기도 했고, 바로 앞으로 지나가는 기차에 몸을 실어 "언젠가는 서울로 상경하여 꼭 성공 할 거야" 라며 다짐하면서 어느덧 그 꿈을 이루어 내어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은 마음속에만 남아있고 거의 못 내려가지만 내 고향 택촌마을은 지금 살고 있는 성남에서도 생각 할 때마다 설레이고 항상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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