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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영(59·아영)/ 재경아영향우회 전임 여성회장, 동화작가·시인
아영, 골짜기에 대한 발라드
흔들리는 수풀 속에서 구절초와 함께 자랐어요. 때로는 엉겅퀴 가시가 잎새라 착각도 했고 이른 아침부터 달맞이와 원추리 꽃말을 찾아보기도 했죠.
머루와 다래를 따러 숲을 헤치던 열정으로 주근깨가 피어나기도 했었죠. 능선을 넘으면 이슬꽃 피고 눈길 오가는 들꽃이 아주 많았어요.
동쪽 옥잠봉 너머를 그리기 시작할 무렵부터 마음에 새로운 별자리가 돋아났던 것 같아요. 안개등처럼 은하수가 출렁이기도 했죠. 차근차근 내일을 쌓아가던 시절, 쌓아올린 돌탑 위에서 어제가 허물어지기도 했었죠.
집 앞 숲속에 너울거리는 수많은 상상속의 나, 봉오리 맺혔다고, 꽃송이 남다르고 색깔 더 선명하다고 말하고 싶은 나무들, 작은 바늘 빼곡히 달고 연두로 소복하게 침엽수, 상록수로 조금씩 자랐어요. 까칠거리는 플라타너스 열매 같은 생각들, 하얗게, 그 작은 이야기까지 꽃피운 조팝나무 같은, 꽃 없이 이파리만 넓어지는, 반듯하게 서 있어도 흔들리던 시절, 별들은 서로를 서로의 빛으로 가리지 않았죠.
소녀 시절, 모자람이 내포된 은은한 시간, 혼자 있기를 좋아했어요. 품고 있는 것들이 얄팍하게 들썩이지는 않게 가끔 물거울을 들여다보았죠.
숲이라는 커튼 속에서 자주 지친 몸에 꿈을 입혔던 것 같아요. 달빛 아래 자투리 시간 사람을 읽었고 몸살나게 꿈을 꾸었던 것 같아요 겨울 밤, 얼음배긴 홍시 먹으며 소설 속 문장들을 끌어당겼던 것 같아요.
서릿발 부서지는 텃밭, 바람의 목울림 받으며 달래, 냉이 봄나물 캐어 움츠린 꿈을 씻었죠. 뾰족뾰족한 생각들을 다듬기도 했어요.
아버지가 산에서 따다주시던 다래가 떠올라요. 아막성 산비탈에 다래넝쿨들, 재 넘어 허기재 산마루에 참다래 익어 가는지 보고 싶어요.
강인지 내인지 모를 적, 두락리 민물새우 잡으러 간 일도 떠오르네요. 가장 좁혀졌던 아버지와의 거리 새우처럼 폴짝 뛰오르던 내가 보여요.
그 언덕에 들국화가 피었을까? 지금도 가을이면 꽃집 앞에서 서성이고 있어요.
서리 내린 들판에서 찾던 그리움 몇 송이를 피워볼까, 국화꽃 들고 고향의 초승달빛만큼 꽃병에 담아 두곤 했어요.
흥부참샘 언덕에 옻나무 단풍들어 흔들거렸죠. 청정한 샘물 적덕가 흥부가 화초장을 지나 흰죽배미를 지나 이곳에서 물마시고 허기재 넘어 갔다고 하셨죠. 지금은 한가롭지만 가족들 달게 마시던 샘물, 새벽녘 정안수, 조왕신께 물 떠놓던 전설 같은 이야기, 일렁이는 물결 맹물이 아니었지요. 우리에게 끊임없이 솟아나는 열정 거기서부터 시작됐을까요?
그 산골마을들 시래기타래처럼 묶인 설화를 안고 있었죠. 골목마다 무청 같은 인정이 끓고 끓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끈끈했었죠. 무쇠솥에 푹푹 끓인 그리움이, 시래기의 구수함이 배어 있어요. 아직도 매순간 우리 삶에서 꼼지락거려요.
생의 한겨울, 알래스카 설원의 찬연한 오로라처럼, 가슴 속 갈라지는 갈증으로 흙색의 돌이 되어도 속으로 더운 피 끓이며 쏟아지는 여름 폭포수처럼 그곳을 생각해요. 더 맑아지기 위해 끊임없이 솟아나고, 흐르고, 무엇과도 어울릴 수 있는 산골물, 뿌리 넓혀 푸르게 파도치는 나무의 열정들.
이제 눈감으면 오르르 쏟아질 것 같은 포도넝쿨 떠오르고 옛집 뒤뜰에 살구나무 조금씩 살아나는 그곳, 토란잎 어지러운 햇살, 우엉뿌리 실하게 땅속에서 자라는 텃밭의 향연, 그 모두를 품은 저 도랑물 소리 아직도 들려오고 있어요.
품는다는 말에는 노란 빛들이 곰실거리죠. 그래서 아직도 해마다 아영에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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