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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원 경내 오작교가 설치된 호수에는 삼신산과 삼신산을 지키고 있는 커다란 자라 형상의 돌이 있는데 자세히 바라다보면 금세라도 물속으로 들어갈 것 같은 착각이 인다.
자라돌 옆에 새겨져있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자라돌(鰲石) ‘漢書에 渤海에 有大鰲하야 背負三山’ 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를 연상해서 호중에 삼신산(三神山: 瀛洲, 蓬萊, 方丈)을 선조 15년(서기 1582)에 관찰사 송강 정철이 만든 뒤 이 고장에 재변이 자주 일어나게 되자 여기에 자라돌을 만들어 삼신산을 지켜보게 한 뒤부터 재변이 없어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지리산(智異山)은 남해(南海) 가에 있는데 이는 백두산의 큰 줄기가 다한 곳이다. 그래서 일명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한다. 세상에서 금강산을 봉래(蓬萊)라 하고 지리산을 방장(方丈)이라 하고 한라산을 영주(瀛洲)라고 하는데 이른바 삼신산(三神山)이다.’고 쓰여 있고 중국 상고의 지리서인 「산해경」을 보면 ‘발해(渤海)의 동쪽으로 몇억만 리나 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곳에 대학(大壑)이 있는데 실은 바닥이 없는 골짜기여서 그 아래엔 바닥이 없으며 그 곳을 귀허(歸墟)라 부른다. 온 세상 팔방(八方)의 물과 은하수의 흐르는 물이 모두 그곳으로 흘러들지만 물은 늘지도 않거니와 줄지도 않는다. 그 가운데에 다섯 개의 산이 있는데 첫째는 대여(岱輿)요. 둘째는 원교(員嶠)요. 셋째는 방호(方壺-방장산)요. 넷째는 영주(瀛州)요. 다섯째는 봉래(蓬萊)이다. 그 산들은 높이와 둘레가 3만 리이며 그 꼭대기에는 9천 리 넓이의 평평한 곳이 있다. 산들 중간의 거리는 7만 리인데 그곳에서는 이웃처럼 지내고 있다. 그 위의 누대와 궁관(宮觀)들은 모두가 금과 구슬로 되어 있고 그 위의 새와 짐승들은 모두가 순백(純白)색이다. 대여(岱輿)와 원교(員嶠) 두 산은 대해(大海)속에 침몰되고 지금은 방호(方壺), 영주(瀛洲), 봉래(蓬萊) 등 삼신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무제기(武帝紀)에 ‘전한(前漢) 무제(武帝) 태초 원년(BC 104)에 감천(甘泉)에 건장궁(建章宮)이라는 대규모의 궁궐을 새로 지었는데 그 북쪽에 높이 20여 장의 점대(漸臺)가 달린 거대한 연못을 만들고 이름을 태액지(太液池)라고 하였다. 그 안에 해중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의 세 섬과 호량(壺梁) 구어(龜魚) 등을 만들어 설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BC 426년 천하를 통일하고 강력한 국가를 건설한 진시황은 인간의 부귀와 영화, 권세를 마음껏 누리게 되자 생에 대한 애착이 커져서 방사(方士) 서시(徐市)를 시켜 동방 삼신산에 가서 불로초 구해 오도록 하였다.
모두 삼심산 신선이 사는 이상향의 세계를 의미한다.
삼신산은 태을(太乙: 선녀라는 뜻)이 내려와 노니는 곳이라 하며 이 삼신산은 동해에 사는 어마어마하게 큰 자라가 등에 업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이러한 이상적인 전설에 따라 만들어진 삼신산에 자라가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다.
옛 선인들은 남원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면 동남방에 위치해 예로부터 동남풍만 불어오면 남원에 천재지변이 잦았다 한다. 유행병이 퍼지거나, 큰불이 나거나, 홍수로 인해 인명피해 생기자 오행설에 동남풍을 제압하려면 동해에 사는 자라의 힘으로만 가능하였고 이를 제압하는 의미에서 광한루 앞에 자라상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후로 동남풍으로 인한 천재지변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렇듯 신선 사상의 결정체인 남원 광한루원의 산신산과 자라돌은 고대 사상의 접목된 향유공간이기도 하지만 신앙적 대상물을 뛰어넘어 이상향의 최고봉을 완성시키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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