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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 가야 기문국의 모산과 토기 문양의 비밀코드 해제

 

가야문화의 대중적 유물은 토기이다.

여러 가지 형태는 사용처의 다양성을 말하고 문양은 당시의 사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나는 그러한 토기 중에 7개의 잔이 올려 진 잔대와 5개 주름통의 토기 문양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궁금했다.

누구도 답이 없으니 여기저기 널 부러진 이야기 조각을 맞춰 이어 붙여야 했다.

 

1500여 년 전 한반도 남쪽 땅에 여러 부족의 나라가 이웃하며 살았다.

어떤 부족은 나라를 키워갈 힘이 컸고, 어떤 부족의 나라는 아직 어렸으나 조상이 한 핏줄이었으니 서로는 동맹의 이웃사촌으로 살아갔다.

부족장급의 통치력 수준에 맞는 나라의 기본 틀은 가졌으나 그렇다고 사람살이의 규범이 허술하지는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은 비슷한지라 나쁜 놈은 처벌하고 선행은 귀감으로 삼는 공동체였다.

그런데 천지간의 자연현상은 두렵고 신비스러운 인간영역 밖의 존재였다.

태풍이 불거나 벼락이 치거나 달이 월식이 되거나 하는 것에 더하여 전염병이 돌거나 흉년이 들거나 하는 것의 모두는 부족의 공동체가 맞이할 심신의 큰 재앙의 소재가 되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제사장이었다.

제사장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부족의 생활이란 노동력이 운명을 가르는 에너지였다.

농사와 수렵과 천렵에서 힘으로 얻어지는 식량이 부족원들의 생명줄이고 나라를 지켜내는 국방력이기 때문이었다.

그 앞줄에 힘쎈 남자들이 있어야 했고 조력자인 여성과 노인 아이들의 가족이 뒤에 있었다.

그런데 장애인과 병든 자는 부족 공동체에 기여할 길이 거의 없었고 그들의 존재가치는 부족공동체의 부담으로 자리했다.

장애인들은 부족원 모두가 낮에 일하러 나가면 혼자 남아 힘든 삶의 나날을 가져야 했다 .

미안하고 자책감에 시달렸다.

그들은 부족공동체 주거지 주변에 있던 동굴이나 바위굴로 자발적 피난을 선택해야 했고 그곳을 삶터로 가져야 했다.

거지처럼 누군가 가져 다 주는 것을 받아먹고 하늘에 자신의 목숨을 맡기며 말이다.

그들이 밤낮으로 할.수 있었던 일은 하늘을 보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었고 그렇게 한해가 지나면 일 년 동안 나날의 자연현상이 기억 되었으며 수년 동안의 그 경험적 관찰력은 지식이 되었으니 훗날 백발백중의 예언에 사용되었다.

밥을 가져 다 주는 사람에게 며칠 후에는 큰 비바람이 몰아칠 것이니 미리 대비하라고 일러주면 그 예언대로 이루어졌다.

아막성에서 붉은 먹구름이 넘어오면 두어 시간 뒤에는 마른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진 것도 맞춰냈고 봄날 동굴 앞 할미꽃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면 그해는 가뭄이 든다는 예언도 맞았으며 또 며칠 후 낮에 해가 갑자기 사라지고 온 세상이 암흑이 될 것이라고 하면 그리 되었고 등등 그 장애인의 예언은 어느 사이에 부족공동체의 구세주로 등장하고 있었다.

부족원들은 그 장애인을 하늘이 보낸 신녀라며 모셔와 받들면서 제사장으로 섬겼으니 크고 작은 일은 그 제사장에게 물어 결정을 받고 부족장은 그것을 이루어 냄으로서 예전보다 더 낳은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 되었다.

 

장애인이던 제사장은 그 예언적 구심체를 부족공동체에 들였으니 칠성문화다.

변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를 관장하다고 믿는 북극성과 그 주변에서 사람에게 기운을 내어 준다고 믿었던 북두칠성과 다섯별 카시오페아의 신이 그것이다.

동굴에서 변하지 않은 그것에 매일 눈을 대었었고 그것을 중심으로 자연의 흐름을 습득했기에 북극성과 북두칠성과 오성 카시오페아는 그에게 신의 존재였다.

그 실체는 매일 밥을 먹는 식기인 토기에 들어졌으니 박물관에 보인 토기에 그 흔적이 존재한다.

가야의 토기 중에 잔대 위에 올려놓은 7개의 불을 밝히던 토기잔 그리고 큰 그릇받침대의 몸통에 새긴 7개 혹은 다섯 개의 주름통은 그것의 상징체다.

그것들은 부족원들의 가정에 들어 방 웃목에 두고 끼니 때 마다 그 위에 밥그릇을 올리며 조상신을 섬기게 되었으리라.

 

지리산 운봉가야 기문국의 터전인 아막골의 모산은 그 제사장 신녀의 삶터이지 않았을까 싶다.

가야시대의 제사장은 어머니였을 것이니 그러하고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는 조상제사의 목기가 저 가야 토기의 축소판이라는 생각도 그것의 후원군이다.

신라 화랑들의 수련 터중 하나는 아막성이었고 그들의 조상은 제사장이었다 하니 운봉 가야 기문국의 아막성은 신라가 모산성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들였다.

그러하니 운봉가야 기문국 땅의 모산은 가야로 부터 이어온 나라를 지켜내는 기운을 가진 몸집 작은 큰 성산이 아니고 무엇이랴

스토리가 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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