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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 가야 기문국의 적 감시 레이더 봉화산 봉수대

 

 

 

 

 

남원에 가면 봉화산이 있다.

먼 옛날 장수가야와 운봉가야 기문국의 경계에 위치한 봉화산은 해발 919m로 이 일대에서 가장 높다.

그곳에 봉수대가 있다.

 

지금의 아영면 봉화산 정상자락에 그 흔적이 보이는 봉수대는 우리들이 궁금해 하는 가야 기문국의 이야기를 내어 줄 수 있을까?

봉수대는 사방의 관찰이 쉬운 높은 지형에 불빛이나 연기가 보일 수 있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하여 적의 동태를 조기에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국방 통신 시설이다.

봉(烽)은 밤에 횟불을 올려 연락하는 것을 말하고, 수(燧)는 낮에 연기를 올려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뜻하니 봉수대는 24시간 감시체제를 구축한 레이다망인 셈이다.

가야시대 기문국의 경계에 이러한 봉수대가 존재했다함은 그 이유와 역할이 크게 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까지도 활용되었을 봉화산 봉수대는 고지도상에는 가야시대의 기문국 땅에 나타난다.

오래된 성터로 보이는 곳의 안쪽에 있는 봉수대는 운봉가야 기문국 땅에 그려져 있으니 그 활용을 누가 사용했을까 하는 의구심에 대한 답을 내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봉화산 봉수대와 연관 지을 수 있을 만한 가장 오래된 역사는 가야시대이다.

봉화산을 경계로 북쪽으로는 장수군 번암면이고, 남쪽으로는 남원시 아영면이다.

가야시대에는 장수가야였고, 운봉가야의 기문국인 셈이다.

두 나라 경계에 봉화대가 있다.

두 나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봉수대가 군사적 목적이 큰 것이다”라는 생각을 대면 두 나라는 서로 적대국이어야 하고, 봉수대가 상대방 나라의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통신망의 역할을 했다면 우호국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두 나라는 공통점이 많다.

철과 말 그리고 편자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최근에 장수가야의 고분에서는 말뼈와 편자가 발견되었다.

철의 사용 흔적은 기문국에서 보다 장수 가야에서 더 많이 발견되고 있으나 철을 가공해야 하는 대장간의 이야기는 운봉가야 기문국에서 더 많다. 그리고 지금도 두 지역 사람들은 서로 오가며 농사를 지은 곳이 많고, 이웃사촌처럼 우애 있게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나 혼인관계로 이어진 사돈관계가 많은 것은 오래된 역사에서 두 지역이 적대적 관계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여기에 봉수대에 관한 이야기 중에 크게 관심 가는 것은“봉화산의 봉수대 연기는 아영사람이 피우고, 그 연기는 장수 사람이 먼저 본다”라는 속담이다. 즉 그 봉수대는 양 지역의 사람들이 공동 사용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그 이야기의 과학적 논거는 이 봉수대 주변의 풍향이다.

이곳은 낮에는 바람이 아영에서 장수방향으로 분다.

그렇기 때문에 낮의 봉수대 연기는 장수 쪽에서만 볼 수가 있다.

반대로 밤에 피운 불빛은 장수 쪽에서는 보이지 않고 아영 쪽에서만 볼 수가 있다. 장수 쪽에서는 중간에 위치한 산들이 불빛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수는 낮 연기를, 그리고 아영은 밤 불빛을 나누어 주는 형제 봉수대”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하니 봉수대에 전해오는 이야기와 활용도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펼쳐보면 두 나라가 사이좋게 짠 비단 같은 이야기에 도달한다.

즉 장수 가야의 튼튼한 남쪽 요새는 봉화산이었고 그 산 너머는 기문국이었다.

반대로 운봉 가야 기문국의 북방을 지켜내 주는 요새는 봉화산이었다.

 

봉화산은 그렇게 두 나라 남쪽의 적과 북쪽의 적을 서로 방비해주는 형제의 나라가 되게 해주는 마중물 이었고 그 통신망의 공동 활용체가 봉수대였을 것이다.

장수가야 쪽에서 적이 너머 오면 기문국이 위험하고, 기문국 쪽에서 장수 가야 쪽으로 적이 너머 가면 장수 가야가 위험하니 서로의 경계에 있는 가장 높은 관찰지인 봉화산에 봉수대를 설치하고 공동 활용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장수가야와 운봉가야 기문국 두 나라는 말과 편자의 활용과 대장간 기술을 공유하고 방비가 취약한 남쪽과 북쪽의 국경을 서로 보완해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라를 지켜낼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의 두 형제 나라 이야기는 봉수대의 연기와 불빛으로 사라지며 산화되었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찾아 헤메고 있을 뿐이다.

봉수대를 사이에 두고 가야 기문국의 나라였던 지금의 아영에는 형제간의 우애를 세상에 내어준 흥부 이야기를 가진 곳이 있고 봉화산 장수 쪽 아래 번암골 수분치에는 조선시대 작은 병영이 남원고지도에 보인다.이 또한 오래된 가야 기문국의 이야기를 가진 흔적은 아닐까? 그 궁금증이 깊어지는 끝은 스토리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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