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가뭄에는 고을원님이 백성을 살리고, 이년 가뭄에는 나라님이 백성을 살리나, 삼년 가뭄에 기댈 곳은 둠벙뿐이다.
둠벙은 가뭄 때 논에 물을 공급해주던 손바닥 정도의 소류지였다.
논 귀퉁이에 자리했던 그 둠벙이 사라졌다.
둠벙은 물만 사용하는 곳이었을까?
옛날 둠벙은 우주의 기운이 내려앉아 곡식을 내어주는 곳이었다.
봄이 되어 둠벙이 새물을 내면 물방개가 이사를 오고 엿장수는 달리기를 하여 자리 잡고 올챙이는 기진맥진 입성하고 아버지의 솔가지 그늘로 둠벙은 우주가 된다.
둠벙은 그렇게 자연의 기운을 모아 사람이 배고파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뭄에 물을 내고 흉년을 너머가게 했다.
그래서 농부는 둠벙에 고사를 지냈다.
조상은 집에서 고사로 모시고, 가족은 둠벙에서 고사로 살려낸다는 둠벙고사는 식량확보의 최종 보루였다.
그 둠벙 논에서 나오는 쌀로는 할아버지 밥을 지었고 노약자나 환자 그리고 젖떼기 아이의 기력회복 죽을 쑤었다.
삼년가뭄에는 나라님보다 둠벙이 낫다는 말은 우리의 생명이 저 둠벙에서 나왔음이라.
둠벙은 봄에는 입을 열어 물을 담고 여름에는 토해내서 가뭄 농사를 살리고 가을에는 해충의 은신처를 내어 개구리 먹이가 되도록 하니 풍년이 들게 하며 겨울에는 일 년 사용한 논 토양오염물질을 받아들여 겨울 내내 습지가 되어 정화해 낸 곳이다.
그러하니 둠벙은 농사의 생명창고였다.
시절과 사람과 자연의 삼합이 풍년을 낸다는 농촌의 삶은 우주가 내어준 농촌질서의 터전이다.
농사를 자연의 이치에 끼워 넣어야 가족의 생명이 보장되던 농경시대 농사의 시절 받음은 둠벙이었다.
둠벙이 입을 열면 종자를 꺼내야 했다.
그때쯤이면 둠벙에 물방개가 방패등을 내밀고 둠벙이 새물을 내어 봄이 왔으니 그렇다.
둠벙에 든 개구리가 울면 소금장수 물방개 물거미들이 둠벙을 놀이터 삼는다.
엿장수가 물위에 장판을 깔면 물방개는 빙빙 살풀이하고 소금장수는 씨름을 하고 물거미는 줄타기 재주를 부린다.
이때쯤이면 풀매기와 병충해방제에 가족이 나서야 했다.
둠벙에 풀벌레까지 모여들면 잡초와 해충들에게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둠벙과 농부가 한 해를 잘 살면 풍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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