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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춘향영정의 가치 <2>한병옥/ 남원역사바로세우기시민연대

남원뉴스는 최초 춘향영정과 관련해 남원역사바로세우기시민연대 한병옥 선생이 보내온 글을 3회에 걸쳐 지면에 게재합니다. 글이 주장하는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3. 기녀 최봉선과 화가 강신호

먼저 기녀 최봉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최봉선의 본명은 최순남입니다. 부산시 서대신동에서 아버지 최영서와 어머니 강옥이 슬하에서 1901년 3남매의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바로 아래 남동생이 최순복이었고, 막내 여동생이 최수련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3남매의 출생과 어린 시절에 대해 더 정확한 것들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두 동생이 모두 남원에 와서 살다가 떠났는데 남동생은 남원에 살면서 4형제를 낳고 살았으나, 최봉선 사망 후 모두 남원을 떠났고 여동생 수련은 나이 20에 음독자살로 생을 마쳤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가를 볼 수 있기 때문인데, 여동생 수련 역시 언니와 함께 남원에서 기생 노릇을 하다가 자살했습니다. 최봉선이 소녀가장으로 동생들을 거느렸다는 것인데, 최봉선의 삶과 동생 수련도 기생이었던 것으로 보아 부모 중 적어도 어머니는 기생이 아니었나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최봉선 자신은 20세에 이미 전국에 알려진 기생이 되어 있었기에 그 기능을 어머니에게 배웠던 것이 아니었나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강신호입니다.

1904년 강재순의 아들로 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강재순은 봉양학교를 설립해서 교육독립운동을 했던 분으로 진주의 부호였습니다. 큰아들 강상호도 독립운동을 하면서 인권운동을 했는데 처음으로 진주에서 형평운동을 시작해 전국적으로 활동했던 분으로 백정 해방운동을 창시한 분입니다. 둘째아들 강영호는 아동문학가이면서 방정환 선생님과 함께 아동운동을 전개했던 분입니다. 강신호가 바로 그 집안의 셋째아들입니다.

14세인 1917년 결혼하면서 서양화(유화)에 접하게 되었고 20세였던 1924년에 조선미술전시회에 ‘아침의 정물’로 입선하여 세간을 놀라게 했습니다. 1925년에는 동경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했고 진주성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였습니다. 이어서 1926년엔, ‘의자’가 입상하였고 문외한이라는 미술평론가의 칼럼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1927년에는 ‘작품 제9’가 조선미술전에 입상했습니다. 특히 1925년 제4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정물’로 입상하여 학생 중에서 최초의 입상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강신호는 1927년 개인전을 준비하던 중 진주 남강에서 익사하여 생을 마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연상의 기녀와 연하의 화가가 언제 어디에서 만나고 어떤 연관 관계였는지를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최봉선 기녀가 진주에서 활동한 흔적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최봉선 기녀의 뜻과 요구를 받아들여 강신호 화백이 최초 춘향 영정을 그렸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최봉선 기녀의 의뢰로 강신호 화백이 최초의 춘향 영정을 그렸음을 추적해 보려고 합니다.

최봉선 기녀는 자신과 관계된 인간적 연결이나 연계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출생과 가계도 법적인 계보로 분명한 것만을 알아낼 수 있었지 자신의 입으로 입증한 것은 거의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 서슬퍼런 시대에 기생을 하고 있던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자 한 사람은 없었을 것임을 알면서도 입이 너무 무거웠던 사람임은 분명합니다.

그가 최초로 공식적인 기록으로 세상에 나타난 것은 1920년 남원에 나타난 것이 최초입니다. 이 해에 운봉의 박부자 집에서 재실을 짓고 준공식을 하며 잔치를 크게 벌였는데 이때 출연진에 최봉선이 등장합니다. 남원과 함양에서 기생들을 불러들여 여흥을 북돋웠는데 유성준을 비롯한 판소리 대가들과 함께 최봉선이 나와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온 자태로 춤을 추었다고 극찬합니다. 명창이 아닌 무희로 나타납니다.

이 때 최봉선을 이끌어온 사람이 유성준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는 진주 기생청에서 판소리를 지도한 사람이었습니다. 최봉선이 나이 20세 때 진주에 거처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유일한 자료입니다. 부산 태생 최봉선은 이 때 이미 진주에까지 진출해 있고 전국적으로 알려진 기녀들의 명성에 올라있었음을 알게 합니다.

 

4. 강신호의 요절과 최봉선 Ⅰ

다음으로는 24세 때인 1924년에 남원에 들어왔다는 것은 자신이 밝히고 있습니다. 동생 수련과 함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해에 최봉선이 춘향사당을 지어 춘향 제사를 모시자고 발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당돌한 여자이고 기녀라 해도 낯선 고장에 들어오자마자 본바닥에서도 생각이나 내밀한 계획도 없는데 기녀의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자는 제안을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이 제안은 최봉선 기녀가 오래 전부터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른 곳도 아난 남원으로 찾아들어 이런 제안을 했다는 것은 이곳으로 찾아든 근본의도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최봉선은 200원이라는 거금을 내놓으며 기생동료들을 설득하여 사당 건립 모금운동을 시작하였고, 1927년에 군산에서 모금 운동을 하고 있을 만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해에 남원권번에 들어가 수기(으뜸기생)가 되어 남원의 기생들 세계를 좌우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큰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1927년은 강신호 화백이 남강에서 익사하게 되는데 그가 언제 최초 춘향 영정을 그렸겠느냐는 의문입니다. 이 사건이 최초 춘향 영정을 그린 사람은 강신호일 수 없다는 선입견으로 적용될 논리 구성을 할 수 있습니다. 1924년에 최봉선은 진주를 떠나 남원에 살고 있었기에 연결고리가 전무합니다.

그런데 최초 춘향영정이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것을 우형 임경수라는 동양화가가 완성시켰다는 사실을 접합시키면 또 다른 의문이 생깁니다. 최초 춘향 영정은 1920년대 기준으로 보면 초대형 유화 작품일 것입니다. 이 초대형 작품을 완성시키지 못해 또 다른 화가의 손으로 완성했다는 것은 2가지의 확실한 사실을 입증합니다. 하나는 처음 그린 화가가 돌이킬 수 없는 큰 사변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과 두 번째로는 이 초대형 작품을 시작하고 그린 것은 한두달 만의 일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그려지고 있었던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최봉선 기녀가 1924년에 남원에 들어와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자는 발의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즉 최봉선은 1924년 이전부터 영정 제작의 발판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당돌하게 사당 건립과 춘향 제사를 제안하고 추진할 수 있었을 거라는 가능성의 추정입니다.

1920년 유성준 명창과 남원 운봉에 공연 왔을 당시 최봉선은 진주에서 기생 노릇을 하고 있었을 수 있으며, 그 때 입안하고 실천에 옮기고자 했던 일을 실현하기 위해 남원으로 진입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하겠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해도 1924년 남원에 진입했을 당시에는 그 신념이 구체화되어 있었고 춘향 영정 제작은 가시화 단계에 있었을 것입니다.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불행히도 1927년 강신호 화백은 익사로 요절합니다. 그런데 이 미완성의 영정은 이유 없이 남원으로 옮겨져 옵니다. 그 이면에는 아무도 모를 것 같던 인물들이 연계되어 있을 것입니다. 강신호가 그런 그림을 그리다 미완으로 남겨놓은 채 요절했다는 것,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리게 된 내력을 알고 최봉선과 연결고리를 확실하게 알고 있던 누군가에 의해 이 그림은 남원의 최봉선에게로 올 수 있었습니다.

<다음호에 3회 계속>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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