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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춘향영정의 가치남원역사바로세우기시민연대 한병옥

남원뉴스는 최초 춘향영정과 관련해 남원역사바로세우기시민연대 한병옥 선생이 보내온 글을 3회에 걸쳐 지면에 게재합니다. 글이 주장하는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1. 영정이 갖추어야 할 절대 조건

영정은 사람의 초상화 모두를 일컫는 말이지만 이 자리에서는 사당에 모시고 제사 지내는 초상화로서의 영정에 국한하겠습니다.

이 말 속에는 영정이 갖추어야 할 절대적 요건이 들어 있습니다. 즉 사당에 모셔진다는 것은 후손 혹은 이를 대신할 수 있는 후예가 있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조건과 제사라는 의식을 받는 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실존 인물이어야 한다는 전제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춘향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춘향전, 춘향가의 서사 속 인물인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춘향 영정의 숨통을 틔우기 위하여 부대조건을 열어놓았습니다. 제사를 지낼 수 있는 후손 혹은 후예가 있으면 가능할 것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남원의 경우 춘향의 후손일 수는 없지만 그 후예라 해서 굳이 부정할 사람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실존 인물이었던 인물보다 더 확실한 실존화가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형상화의 기록이 춘향전이고 춘향가입니다. 그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춘향의 삶과 정신과 의지의 실천이 남원인의 표상이 되어 있으며, 그 얼을 본받아 계승하고 선양해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실존 인물이 아닌데도 실존화 하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오히려 선양하고 계승 발전시키려 하는 것이 남원인이며 남원인들이 힘을 모아 거행하는 춘향제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춘향의 어떤 면모가 춘향을 찬양하고 그 정신을 발전시키고 선양해야 할 남원 정신이 되는 것일까요?

이에 일편단심의 정절을 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춘향전, 춘향가에 서려 있는 춘향 정신이 정절이라는 이 한 마디로 끝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춘향전은 암행어사 출도 후의 마무리 다음에 정경부인으로 모셔지고 몇 자매를 두고 여생을 마쳤다는 한두 문장으로 소설은 종결됩니다. 문제는 암행어사 출도까지가 종결이라 보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행복한 결말로 권선징악의 종결입니다. 물론 결혼을 했으니 정경부인으로 봉해졌을 것입니다. 그것을 이유로 춘향을 정절의 표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뭔가 미심쩍음이 남습니다.

분명한 것은 십장가와 어사서에서 부르짖는 권력에 대한 저항, 권력의 횡포에 대한 저주, 인권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는 가진 자들의 횡포를 끊어내고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인권 평등을 부르짖고 구가하는 바로 그 정신에 춘향은 목숨을 걸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바탕에 사랑이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춘향 정신이고 이 춘향 정신이 곧 춘향전의 진면목이 아닌지요.

춘향과 몽룡의 사랑은 숭고하고 아름다우며 본받아 마땅하다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청순하고 고귀한 사랑은 결혼한 다음에야 정절로 격상되지만 시집도 가지않은 처녀에게 일편단심의 정절을 투입한다는 것은 좀 억지스러운 면이 엿보입니다. 더구나 처녀의 신분을 영정으로 모셔놓고 댕기머리 처녀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불가하다는 생각과 느낌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춘향이가 예뻤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을 만큼 아름다운 자태나 예쁜 미모였다 하여 그 미모나 자태에 예를 갖추고 더구나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사람됨을 천박하게 할 수 있다 해야 할 것입니다. 여자가 예쁘고 자태가 빼어나지 않으면 정절을 지킬 자격도 없다 혹은 불의에 저항할 인권도 자격도 없다는 풍토가 조성될 수도 있어 지극히 조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영정은 그 사람의 삶의 역정을 담아내는 그 분의 인품과 정신의 표상이고 그 분을 영정으로 모셔서 받들고 계승하고자 하는 것이지 예쁘다거나 아름답다는 자태에 예를 표하고 계승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게다가 처녀를 모셔놓고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절하며 축수한다는 것은 축수하신 분들에 대한 기만이라고 보입니다.

영정은 영정다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추모하고 계승 발전시켜 선양해야 할 것은 그분이 남기고 베푼 정신과 그 정신으로 이루어진 업적인 것이지 미모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춘향전이나 춘향가는 실존 인물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그러한 춘향 정신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춘향사당은 춘향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고 제사를 모시는 곳이지 춘향의 미모나 자태를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며 미술관이나 전시장과는 그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2. 춘향제향이 거행되어지기까지(약술)

창조적인 모든 일에는 발상한 사람이 있어야 하고, 이를 계획하고 추진해서 이루어낸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남원에서 춘향제향이 이루어지고 뿌리내리기까지의 전체적인 윤곽을 대충은 알아야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겠다 싶어 간단하게라도 소개하고자 합니다.

남원에는 보물에서 국보로 등급이 조정된 광한루 누각이 있습니다. 일본제국 당시 이 누각이 너무 낡아서 새롭게 보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때가 1920년대였습니다.

그 즈음인 1924년 부산 태생인 최봉선이라는 기생이 남원으로 들어와 남원권번의 기생이 됩니다. 이 신출내기 기생의 입에서 춘향사당을 짓고 춘향제사를 지내자는 건의가 제기됩니다. 당시 남원에는 노계소와 소계소라는 향토유지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소계소의 젊은이들이 이 뜻에 영합하여 최봉선을 돕고자 합니다.

무슨 일을 하려면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것이 돈입니다. 최봉선 기녀는 1927년 아예 기생을 때려치우고 모아둔 거금 200원을 투자하면서 남원 기생들을 설득하여 기금 모금에 들어갔고 지방 순회공연을 하면서 기금을 모았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소계소가 주동이 되어 광한루 누각 보수를 하고 남은 자재를 이용하여 사당을 짓게 됩니다.

1929년 춘향사당이 건립되고 이 안에는 춘향 영정이 봉안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어떤 난관인지는 모르나 준공을 하지 못한 채 계속 지방 순회공연을 하고 지방 유지들을 찾아다니며 모금 운동을 계속했습니다.

신문에 따르면 1930년 10월에 상량식을 했다고 하고 있으나 다음해인 1931년 춘향각이라는 이름으로 6월 3일 낙성식과 함께 첫 번째 춘향 영정을 모신 춘향사당에서 제향을 올리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춘향제의 출범입니다. 전국에서 기생들만 해도 100여 명이 모여 기생 춘향에게 기생들이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역사적인 날입니다. 음력으로 5월 단오날이었습니다.

최봉선이 남원으로 들어올 때 동생 최수련과 함께였는데 1929년 수련이 자살해버리는 아픔을 겪으면서 최봉선 퇴기가 이룩해낸 춘향제가 남원의 명절로 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약술 개관이 필요한 것은 춘향제 출범의 약식 역사라도 알아야 할 필요가 선결문제이기도 하지만 이 사이에 태어난 또 다른 역사 춘향영정 때문이기도 합니다.

1929년 준공식 때 이미 춘향 영정이 봉안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이는 이후 1930년 2월 16일 동아일보에 춘향각 상량식이라는 기사가 있어 1931년 6월 31일 춘향사 낙성식과 함께 100여 명의 기생들의 여흥과 함께 시작된 춘향제 때 최초 춘향 영정은 춘향사당에 봉안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 최초의 춘향 영정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그려졌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남원에서는 이 최초의 춘향 영정을 박물관의 수장고에 넣어둔 채 누가 그렸느냐에 관심이 없습니다. 춘향전의 작가가 미상이듯 춘향 영정을 그린 화가도 그냥 ‘미상으로’ 잘 알 수 없다고 치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화가 알 수 없음’으로 놓아 둘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해 동안 진주의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이를 추적했는데 파고들면 들수록 춘향제를 출범시킨 기생 최봉선과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연결고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최초의 춘향 영정을 그린 화가가 강신호라는 화가라고 믿고 있으나 강신호 화백은 춘향이라는 인물을 거의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화백에게 춘향이 어던 사람인지를 알려주고 춘향의 초상화 영정을 그려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최봉선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모르는 것은 부산사람 최봉선과 진주사람 강신호의 연결고리입니다. 하지만 그림을 청탁하고 이를 수용하여 그린 사람은 최봉선과 강신호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입증하려고 합니다. 이 미완성 그림이 어떻게 남원에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추정하고, 이 추정의 옳고 그름을 판정해 내는 것이 학문하는 사람의 자세라 생각하고 이를 추적하고자 합니다.

<다음호 2회에 계속>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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