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日: 날 일 暮: 저물 모 途: 길 도 遠:멀 원
나이가 늙어서도 할 일이 많음,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출전) : 사기(史記)
초(楚)의 평왕(平王) 때 오사(伍奢)는 태자(太子) 건(建)의 태부(太傅-왕자의 양육관)였고, 비무기(費無忌)는 소부(小傅-太傅 다음 벼슬)로 있었다.
비무기는 간신이었다. 한 번은 태자를 위하여 진(秦)에서 데려온 여자를 평왕에게 권하고 아첨하여 왕(王)의 신임을 얻었다.
이 사실을 안 태자의 보복이 두려워 태자를 참소하였다.
여자에 빠져 버린 평왕은 비무기의 말만 곧이듣고 태자를 국경으로 쫓아 버렸다.
또 평왕은 태자가 반기를 든다는 거짓말을 믿고 이번에는 태부 오사를 꾸짖자 오사는 도리어 왕의 그릇됨을 간(諫)하였다. 이 때문에 오사는 유폐되고, 태자는 송(宋)으로 도망갔다.
오사의 두 아들에게 보복 당할 것이 두려워진 비무기는 태자의 음모는 그 두 아들의 조정이라 참언하였다. 그래서 오사와 맏아들은 잡혀 죽고 둘째 아들 오자서(伍子胥)는 오(吳)로 도망쳤다.
그로부터 오자서는 복수의 날을 기다렸다. 오왕(吳王)과 공자(公子) 광(光)을 뵙고 난 오자서는 공자가 왕위를 넘겨다보고 자객을 구함을 알고 전제(專諸)라는 자객을 소개하였다.
초(楚)에서는 평왕이 죽고 비무기가 평왕에 천거한 여자의 소생 진(軫)이 소왕(昭王)이 되었다.
그 후 내분(內分)으로 비무기는 피살되고, 내분을 틈타 초(楚)를 치던 오왕은 칼에 맞아 죽고, 공자 광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오왕 합려(闔閭)다.
그 후 오자서는 초에 쳐들어가 평왕의 묘를 파헤치고 시체에 3백번의 매질을 가함으로써 아버지와 형의 원한을 풀었다.
이 사건에 대해 지나치다고 비난하자 오자서는 말했다.
“나는 나이가 늙었어도 할 일은 많다(吾日暮途遠).”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np남원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