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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원시는 남원성을 ‘격자형 성곽’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복원 중이라고 한다.
격자형 성곽은 바둑판 형식의 도시계획형 성곽을 말한다. 당나라의 장안성이 대표적이다. 삼국시대에 남원은 백제의 땅 ‘고룡’으로 삼국의 격전지였다.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뒤 남원도 당나라 군인들이 점령했다. 그때 당나라 장수 유인궤가 처음 성을 쌓아 ‘유인궤성’이라고도 불렀다. 한편 통일신라 초기 685년(신문왕 5)에 처음 남원소경이 설치되었으며, 691년(신문왕 11)에 남원경 성이 축조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 『성종실록』에는 성종의 명으로 1477년(성종 8) 남원성을 축성하기 시작하여 1479년 7월에 절반 가량 쌓았고, 1492년(성종 23) 이전에 완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북문과 북쪽 성벽 복원은 조선시대 때 축성된 것의 복원이지 통일신라의 격자형 성곽과는 거리가 멀다.
남원성 복원 현장의 이름은 ‘만인공원’이다. 몇 년 전 남원시민들에게 의견을 묻고 투표를 진행해 ‘만인공원’으로 이름 지어진 곳이다. ‘만인’은 정유재란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국한 선조들을 뜻한다. 만인의총과 더불어 격전지 남원성을 기억하기 위해 시민들이 선택한 이름이다. 만인의총이 국가관리로 승격된 것에 이어 작년에 남원성 전투가 국정교과서에 등재되는 쾌거가 있었다. 이에 발맞춰 전투의 현장인 남원성터를 선조들의 항쟁 정신에 맞는 공원으로 만드는 일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본래 만인의총은 철길을 사이에 두고 역사 건물 건너편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사진에 의하면 만인의총은 단순한 흙 봉분이 아니라 돌무덤과 흙 봉분이 함께 이루어진 무덤이었다. <용성지>에는 ‘남원성 안에 여러 개의 돌무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무덤들이 모두 만인의총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만여 명의 시신을 한 곳에 묻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남원성은 선조들의 피가 흥건히 스며든 곳이다. 그러나 일제가 성벽을 부수고 성을 관통하는 위치로 기찻길을 깔아 버려 아주 오랫동안 남원 사람들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한 채 기차만 타러 다녔다. 일제는 만인의총 본 무덤을 개인의 묘보다 못하게 훼손하고 소유권을 충렬사에서 제국재향군인회로 이전등기까지 해 버렸다. 그리고 1931년 남원역 플랫폼과 역사를 건립했다. 남원성 전투의 흔적을 철저하게 없애 버린 것이다.
(역 건물은 한국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1957년 다시 건립, 현재 건물은 1986년에 재건축한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기차역으로 전혀 합당하지 않은 위치다. 남원역에서 상행 200m를 가면 급경사가 시작되고 이 경사를 오르면 급커브에 암반이 나타난다. 남원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다음 역인 산성역으로 가는 길은 90도로 휘어져 있었다. 그렇게 지형적으로 불리한 곳에 굳이 기차역을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래서 평상시에도 기차 탈선이 자주 있었고 결국 1971년에 대형 참사가 일어나 남원초등학교 학생 19명과 전주 공고 학생 3명이 희생되고 말았다.
이것은 일제의 만행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1597년 정유재란 패배의 근원지인 남원성에 대한 복수로 남원성을 짓밟은 것이다. 하여 남원성 전투를 기억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남원역의 무리한 건설과 1971년 참사까지 기억하는 것이다. 4.16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세월호를 보존하고 단원고 학생들이 다니던 교실을 ‘기억 교실’로 보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남원시는 승월대 인공폭포 위에 있는 남원초등학교 학생들의 무덤마저 공원개발을 명목으로 없애고 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는 근현대 문화재로 등록되고 있는 증기기관차의 ‘급수탑’을 철거해 버렸고 플랫폼과 철로마저 철거하겠다고 한다.
만인정신을 짓밟은 참혹한 역사가 진하게 스며있는 남원역과 플랫폼, 철로 그리고 남원초등학교 학생들의 무덤까지가 남원성 전투의 유물과 유적이다. 여기까지 문화재로 등록하여 만인정신을 알리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삼아야 한다.
더붙여, 조금 더 웅장한 남원성을 복원하고 격자형 성곽을 만들고자 한다면 남원성 북문뿐 아니라 남문을 복원해야 한다. 현재 남원성 남문은 새마을금고 사거리 정중앙이다. 교통에 지장이 없게끔 사거리 주위에 건물과 토지들을 매입해서 삼거리를 만들고 광한루 북문 쪽은 차량을 통제하면 된다. 남문은 남원성의 정문으로 남원의 상징이다. 남문을 활성화하여 관광객을 본도심권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남문 밖에는 광한루가 있고 남문 안에는 남원관아(남원문화원)와 용성관(용성초등학교)이 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선조들의 지혜와 열의로 지켜낸 남원 관아의 정문 환월루(진강루)를 하루빨리 제자리로 옮겨와야 한다. 해방된 지 8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향교에서 더부살이하고 있는 환월루를 문화원 정문 앞으로 옮긴다면 위풍당당했던 남원성의 위용을 어느 정도는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지역에나 있는 조선 시대 성문과 성벽을 복원한다고 해서 남원 관광에 과연 얼마나 이바지할 수 있겠는가? 남원만이 겪은 역사를 품은 문화재 복원이 진짜 복원이다. 조선시대 성을 복원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현대를 아우르는 복원을 해야만 남원다운 남원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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