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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이토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하얼빈역에서 저격하기 직전, 안 의사는 일장기를 흔드는 일본인 환영 군중 속에 숨어 있다가 총을 꺼낸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연구서 ‘지식인 안중근’(태학사)에서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안 의사는 환영 군중과 멀리 떨어진 러시아 의장병 뒤에서 총을 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결국 안중근은 일본인인 것처럼 위장하고 이토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 의장병 대열 뒤쪽에서 고도로 숙련된 사격술로 이토의 가슴과 복부에 세 발을 명중시켰다는 것이다. 이 순간 이토 공은 총성이 난 방향을 향해서 잠시 우두커니 서서 낮지만 온 힘을 다한 소리로 ‘누구야?’라고 외쳤다.”
안 의사는 플랩 캡과 폴로 코트를 말쑥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25일 기차를 타고 하얼빈에 도착했다. 당일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특별 열차가 역에 도착하고 이토는 코코프체프와 약 25분간의 열차 회담을 마치고 차에서 내렸다. 이토가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고 환영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안중근은 침착하게 걸어 나와 이토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4발을 쐈다. 첫 발은 이토의 몸을 관통했고 안 의사는 계속해서 확인 사살을 했다. 다시 이토가 아닐 것을 대비해 주위 일본인에게 3발을 쐈다. 처음 쏜 4발 가운데 3발은 이토, 1발은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도시히코[川上俊彦]의 오른팔을 맞혔다. 이어서 쏜 3발은 비서관 모리타이지로[森泰二郞], 만주철도이사 다나카세이타로[田中淸太郞]를 맞혔다. 1발은 플랫폼에서 발견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긴급하게 치료를 받았지만 20여 분 만에 숨이 끊어졌다. 안중근 의사는 즉시 체포되었고 코레아 우라(대한국 만세)라고 외쳤다. 안 의사와 안 의사를 도운 우덕순 의사, 조도선 의사 등 3명은 체포되고 러시아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은 뒤 10월 28일에 일본의 식민지인 관동주 뤼순 감옥으로 이송돼 수감되었다. 1910년 2월 14일에 일본인 재판장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안중근(安重根)]
"안중근은 경술년 양력 3월 26일 오전 10시에 형장에 서서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는 대한 독립을 위해 죽고 동양 평화를 위해 죽는데 어찌 죽음이 한스럽겠소? 하였다. 마침내 한복으로 갈아입고 조용히 형장으로 나아가니 그의 나이 30세였다"
안 의사는 결혼해서 부인과 2남 1녀가 있는 몸이었다. 하지만 안 의사는 감옥 안에서 서예와 <동양평화론> 집필에 몰두했었다. 안 의사는 대한의군의 참모중장 신분으로 총살형을 일제에 요구했지만 일제는 단순한 테러리스트로 간주해 교수형을 집행했다. 그렇게 안중근은 1909년 3월 26일, 향년 32세의 나이로 순국하셨다. 우리가 어찌 이날을 잊겠는가?
형 집형 직전에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 만세를 삼창하고 싶으니 특별히 허락해 달라고 했지만 저지당했다. 백지와 백색 천으로 눈을 가린 뒤 마지막 2분 동안의 기도를 끝으로 형장의 이슬이 되고 말았다. 당시 안중근 의사의 복장은 고향에서 온 비단 조선 복을 입고 품속에는 성화를 넣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의 사형에 임하는 태도가 너무나 침착해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 평소와 조금의 차이도 없이 떳떳하고 깨끗하게 죽음에 임했다고 전해진다.
안중근 의사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해를 하얼빈 공원에 묻었다가 고국이 해방되면 그때 고국 땅에 묻어달라는 말을 남겼다. 안 의사는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 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어 달라고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당시 옥중에서 안 의사의 고귀했던 성과, 대의명분, 그리고 인성을 봤던 일본인들은 그를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지금 일본 미야기현 구리하라 시에 있는 '다이린지'라는 사찰에 안중근을 존경했던 간수 지바 도시츠와 안중근의 위패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안중근 의사가 서거한지 벌써 115년이 흘렀다. 안 의사가 그렇게 희구했던 고국의 독립은 이루어졌지만 그분이 그렇게 희망했던 진정한 독립은 아직 멀리 있다. 문제는 지금 살고 있는 이시대 한국인들이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바쳤던 그 순국선열들은 지금 과연 우리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우리의 현실이 너무 우려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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