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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등불 돋우어라 거친 파도 비추자아침을 여는 창/ 수필가 서호련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반달’ 100주년에)

 

오늘 주일예배 개회찬송가가 가슴을 적셨던 것은 찬송가의 가사가 우연찮게 작금 우리 한국의 정치사회상황과 맛 닿아 있어서일까? 어제 12월 14일 밤, 국회는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의 탄핵을 통과시켰다. 경천동지할 사건이다. 바로 국회의사당 밖 대로에는 수십만의 노도와 같은 시위 군중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고,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시선은 진행 중인 탄핵투표장에 쏠려있는 상태였다. 오늘 예배의 개회찬송가가 처연하게 울려 퍼지는데, 아∼ 우연인가 하늘의 영감인가?

“죄의 밤은 깊어가고 성남물결 설랜다. 너의 등불 돋우어라 거친 바다 비추자” 갑진년 한해의 모든 질곡과 갈등의 물결을 헤치고 조각배는 지금 서쪽나라로 다가서고 있다. ‘동트는 새벽’ 2025년의 여명이 가다리는 그 서쪽나라 말이다.

누가 나에게 노래 한곡 부르라 하면 어김없이 <푸른하늘 은하수>다. 마음속에 한없는 애수와 동심에 젖게 하고 온갖 시름 속에서도 잔잔한 위로를 받는 애잔한 노래다. 그래서 이 동요는 일제의 암흑 속에서 신음하는 우리 민족에게 한줄기 희망의 빛과 위로를 주지 않았는가.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동요작가 윤극영(尹克榮)선생은 190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분은 우리가 어릴 때 배웠던 노래 반달과 설날, 고기잡이 등 수많은 동요들을 작사 작곡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노래 ‘반달’은 1924년도에 작곡 했으니 올해 2024년은 한국 첫 근대 동요로 인정받은 '반달'이 탄생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지난 세기동안 이 땅에서 이 동요만큼 많이 불린 노래가 있었을까. 이 노래가 탄생 했을 당시는 일제가 학교에서 우리말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던 때였다, 하지만 일제도 이 노래가 퍼져나가는 걸 막지는 못했다. 일본, 중국에서는 마치 자신들 노래인양 착각하고 불렀다.

부친의 권유로 경성법학전문학교에 들어간 젊은이 윤극영은 법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우에노 음악학교 등에서 성악과 바이올린을 배웠다. 하지만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무장한 일본인이 숱한 조선인을 참혹하게 살해한 관동 대학살 때 윤극영도 일본 군인에게 붙잡혀 갔다고 한다. 정신을 차려 보니 지푸라기 위에 누워 있었고 눈을 들어 보니 말 머리가 보였다고 한다. 마구간에 갇혔던 것이다.

‘반달’ 창작의 직접적인 동기는 큰누나의 죽음이었다. 부음소식을 들은 그 ​아침에 뜬 반달을 보고 곧 사라져버릴 그 달이 꼭 죽은 누나 같기도 했고, 나라 잃은 조선 민족과 같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라 잃고 타국에서 핍박당한 아픔에 누나의 죽음까지 겹쳐 복받치는 설움을 안은 윤극영, 그런데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서 말없이 뜬 조각달. ‘큰누님은 저 쪽배를 닮은 반달을 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은하수를 건너가겠구나. 순간 그의 머릿속에 어떤 가사와 곡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 바로 동요 '반달'이었다. 한국 동요의 시작이 1924년 바로 이때이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의 처음은 어쩐지 애잔하다. 하지만 그가 가장 고심했다는 2절 끝부분에 가면 달라진다. 고요하게 시작한 1절과 달리 2절은 사뭇 우렁차다. 서쪽만 볼 것이 아니라 동쪽에 뜬 샛별을 보자! 돛대도 삿대도 없이 가던 민족의 설움을 딛고 길을 찾아 가자는 뜻을 담으려 했다는 것이다.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추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는 반달’이란 바로 나라를 잃고 정처 없이 헤매야 하는 처지인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로 시작하는 2절을 쓰던 윤극영은 노래 마지막 부분에서 막혀 한참을 고민했었다. ‘그래. 아무리 슬프고 암울해도 희망은 있어!’ 그러고 다음 가사를 써내러 갔다.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 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이후 수많은 우리 동포는 그 노래에 한(恨)과 설움, 그리고 결코 놓을 수 없는 미래의 희망을 꾹꾹 담아 불렀다. 희미하게나마 멀리서 등대처럼 빛을 내는 샛별을 찾아 반드시 광복을 이뤄내겠다는 염원이었다. 노년의 윤극영 선생이 인터뷰에서 직접 말씀하신 이 노래 가사의 의미는 삿대도 없고 돛대도 없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동쪽의 샛별, 동방의 빛인 새로운 길을 찾아가자는 희망과 미래를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이제 곧 반달은 갑진년 한해와 함께 자유와 정의의 땅 서산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을사년(乙巳年) 청 뱀띠 해의 우람찬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너의 등불 둗우어라 거친바다 비추자!”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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