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인재 등용에 요임금은 容貌(용모)를 보고 순임금은 顔色(안색)을 보고 탕임금은 音聲(음성)을 듣고 문왕은 사람의 風貌(풍모)를 보고 인재를 선발했다는 기록이 『大載禮記(대재례기)』「小閒(소한)」에 있다.
문헌의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미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상을 봐왔던 것으로 보인다. 춘추전국시대에도 『좌전』의 기록에 叔服(숙복)이라는 관상가가 공손오의 아들관상이 魯(노)나라에서 후사를 이을 것이라고 상을 봐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숙복은 노나라 내사이며 관상가로서 첫 번째 이름이 등장한다.
또한 같은 해 文公(문공) 원년에 楚(초)나라 임금이 相臣(상신)을 태자로 삼으려할 때 令尹(영윤)신분인 子上(자상)은 상신의 관상을 보고 만약 그를 태자로 삼으면 초나라에 환란이 일어날 것을 예언 했다. “상신은 벌의 눈과 승냥이의 음성을 가지고 있어 잔인한 사람이다.”라고 예언했다.
당시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骨相(골상)뿐 아니라 음성까지 살피는 세밀함이 이미 발달해 있었음을 밝힌다, 숙복과 자상은 고위 관리였으며 상에 조예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상술은 특수한 분야에서 발달했으며 帝王學(제왕학)이라 불리기도 했다. 또한 관상을 보는 사람을 상인이라 불렀다.
순자『比相(비상)』편에 보면 옛날에는 고포자경이 있었고 지금은 梁(량)나라에 唐擧(당거)가 있는데 사람의 형상과 안색을 보고 그 사람의 길흉·수요를 아는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은 상인이라 칭한다고 기록되어있다. 순자에 의하면 “상인이란 사람의 형상과 안색을 보고 그 사람의 길흉·요상을 살피는 사람을 칭한다”고 적혀있다.
고포자경은『史記(사기)』와 『韓詩外展(한시외전)』에 그의 행적이 보인다. 그는 周(주)나라 孔子(공자)시대 사람으로 『공자세가』에 의하면 공자의 관상을 보고 머리 가운데가 오목하게(공구) 패이고 머리주위에는 볼록하게 나왔다. 눈썹에는 열두 光彩(광채)가 서려있고 몸에는 마흔아홉 가지의 위표가 있으니 훗날 반듯이 大聖人(대성인)이 될 것이다. 또한 당거는 전국시대 양나라의 관상가로 『사기』 「範睢採擇列傳(범휴채택렬전)」에 채택은 燕(연)나라 사람으로 당거를 찾아가 관상을 보이면서 말하기를 “제가 듣기로 이태의 상을 보면서 말씀하시기를 100일 이내에 나라의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하셨다는데 그런 적이 있으십니까” 라고 묻자 “그렇소” 라고 대답했다. 이에 채택이 “부귀는 내가 원래 지니는 것이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수명이니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하였다. 과연 그리되었다. 전한다.
당거가 말하기를 “선생의 수명은 지금부터 43년을 더 살 수 있습니다” 하였다
상학에서도 심상을 중요시 한다. 『神相全篇(신상전편)』에서 사람을 관찰할 때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마음을 아는 것이다”, “형상이 있으나 마음이 없으면 형상도 마음 따라 사라지고 마음이 있고 형상이 없으면 마음 따라 용모가 생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아무리 용모가 좋더라도 마음이 악하면 그 외형은 마음 따라 악해지며, 마음이 착한데 외형이 나쁘면 외형도 마음 따라 착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형의 상과 내형의 상을 견주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에는 이미 관상을 통하여 사람을 파악하는 수단으로 길흉을 예측하는 한편, 즉 목소리 특징, 기색, 용모 등 다양한 측면으로 발달했다. 맹자가 말하기를 “사람을 관찰할 때 눈동자를 살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눈동자(睛)는 그 사람의 악한 마음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바르면 눈동자는 밝으며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눈동자는 어둡다. 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눈동자를 관찰하면 사람이 어찌 선악을 감출수가 있겠는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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