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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을 기억하라! (Remember pearl harbor) 南園 서호련수필가 서호련

 

 

 

 

 

 

 

올해 진주만 공습 80주년, 1941년 12월 7일 공습 8일 일본에 선전포고- 태평양전쟁 발발

진주만을 기억하라! (Remember pearl harbor!)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일본의 진주만공습! 그리고 그 다음날 8일, 즉각 소집된 미 양원합동회의에서의 루즈벨트 대통령 개원 연설이다. 그의 음성은 분노에 찼고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연설이 끝나고 곧 대일 선전포고 여부에 대한 투표에 들어갔다. 상원에서 만장일치, 하원에서 388대 1로 가결되자 루스벨트대통령은 즉시 2차 세계대전 참전을 선언하고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일본은 “일단 미국함대가 전투력을 잃게 되면 아무런 방해 없이 동남아시아와 인도네시아열도 및 남태평양을 정복할 수 있으리라”는 치명적인 오판을 했다. 그해 11월 23일 항공모함 6척, 전함 2척, 순양함 3척, 구축함 11척으로 구성된 일본함대는 나구모 주이지(南雲 忠) 중장의 지휘아래 하와이 북쪽 440km 지점으로 항해 해 나갔고, 이곳에서 모두 360대의 항공기를 출격시켰다. 일요일 아침이었기에 병사들은 대부분 외박 또는 외출 중이었다.

이날의 폭격으로 애리조나 호, 캘리포니아 호, 웨스트버지니아 호는 침몰당하고 오클라호마 호는 전복되었다. 45분 뒤 제2차 비행단이 진주만을 휩쓸었고 메릴랜드 호, 네바다 호, 테네시 호, 펜실베이니아 호가 치명상을 입었다. 그밖에도 함선 18척이 침몰되거나 큰 손상을 입었고 200대 가까운 항공기가 파괴되었다. 군인 사상자는 사망자 2,300명을 포함해 3,400명에 달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잠자는 거인, 미국을 분노케 했다.

미국의 저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개전한지 딱 6개월째(1942.6월 4-7), 미드웨이 해전의 승리는 태평양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진주만 폭격에 참여했던 아카기, 카가, 소류, 하류 등 일본항공모함 4척과 일본해군력의 핵심이었던 제1, 제2 연합함대 병력 3,000여명이 모두 이 해전에서 전멸했다. 미국은 풀빵 찍어내듯이 무기와 군수물자 등을 찍어냈다. 그 양이 전 세계 군수물자의 40%에 달했다. 1939년 당시 325대에 불과했던 전차 생산량은 1943년에는 무려 29,497대에 달했다.

1943년 4월 18일엔, 진주만 공습의 총지휘자이며 일본 연합함대사령장관인 야마모토 이소로꾸(山本五十六)원수가 탑승한 폭격기를 격추하여 그를 사망케 했다. 이어 1945년 초,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많은, 미군 사상자를 내고 탈환한 이오지마(유황도), 사이판을 기지로 미국은 일본 본토 공습을 시작했다. 1945년 3월 9일 늦은 밤, 미국의 B-29 폭격기가 일본의 수도 도쿄의 밤하늘에 소이탄(네이팜탄) 1,700여 톤을 쏟아냈다. 단 몇 시간 동안의 폭격으로 초토화된 도쿄는 약 600만 명의 인구가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도쿄대공습’ 이다.

이와 함께 본토 67개 도시가 폭격으로 쏘가 되었다. 그럼에도 항전을 계속하는 일본에,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에, 9일 나가사키에 B-29가 원폭을 투하했다. 두 도시의 원폭 사망자는 24만 명에 달했고, 강제동원으로 끌려온 우리 한국인 희생자도 3만 명에 이르렀다. 두 번째 버섯구름을 보고서야 일왕 히로히토는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덕분에 한국은 일제에서 해방되었다.

20여 년 전 필자가 방문한 진주만의 바다는 푸르고 아름다웠다. 이렇듯 평화로운 진주만이 일본의 기습 폭격에 의해 단 70분 만에 초토화되면서 전함 애리조나호는 피격 9분 만에 침몰했다. 애리조나호 병사 1,500명 중 사망자 1,100명을 추모하기 위한 <USS애리조나기념관>은 침몰한 선체 바로 위에 지금 세워져 있다. 이때의 사망자 전원의 유해는 애리조나와 함께 지금도 바다에 가라 앉아있다. 그러나 겁 없이 남의 나라를 침략한자들의 말로는 비참하지 않았는가?

독일 브란트총리가 유태인 희생자기념비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였듯이 일본은 피해국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 일제 36년간 이 민족이 받은 노예생활의 고통이 어떠했는가.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사죄해야 마땅하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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